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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살아난 이유

[월간 꿈 CUM] 삶과 영성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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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숲속에 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사냥꾼들이 몰려와 곰이란 곰은 모조리 잡아가 버렸다. 그 날 실컷 낮잠을 자고 일어난 곰은 자신을 뺀 나머지 곰들이 모두 잡혀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지만 참으로 이상한 일이 다 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왜 자기만 빼고 나머지 곰들이 모두 잡혀갔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숲속에서 가장 영리하다고 소문난 여우를 찾아가 그 이유를 묻게 되었다.

“여우야, 숲속에 사는 모든 곰이 잡혀갔는데 난 왜 안 잡혀간 거지?”

그러자 여우가 이렇게 말했다.
 


“에구, 이 쓸개 빠진 놈아! 그것도 몰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을 체험하게 된다. 특히 긍정적 사건보다는 부정적 사건을 접했을 때 우리는 그 이유와 원인을 더 궁금해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왜 엄마는 형제 중에 나만 예뻐했을까?”를 묻기보다는 “왜 엄마는 형제 중에 유독 나만 미워했을까?”를 더 궁금해한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은 왜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보다는, “왜 믿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떠났을까?”를 더 궁금해할 수 있다. 부정적인 사건을 체험하게 되면 인간은 크게 두 가지 방식 안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첫째 방식은 그러한 사건에 대한 원인을 타인이나 환경, 즉 나 이외의 상황에서 찾는 것이다.(외부귀인, 外部歸因) “엄마는 심리적 장애가 있어서 나를 차별 대우한 거야!” “그 사람에게 딴 사람이 생겨 나를 배신하고 가버린 거야!”라는 식이다.

두 번째 방식은 부정적 사건에 대한 이유가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내부귀인, 內部歸因) “내가 못났으니까 엄마는 나를 싫어한 거야!” “나에게 매력이 없으니 그 사람이 나를 버린 거겠지!”라는 식이다.

자격증 시험에 떨어진 미카엘과 라파엘이 있었다. 시험에 낙방한 이유에 대해 이 둘은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미카엘은 시험문제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외부귀인), 라파엘은 자신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내부귀인) 그런데 둘은 재수를 해서 다음 해에 모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자 미카엘은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에 붙었다고 자랑을 했지만(내부귀인), 라파엘은 시험문제가 작년보다 쉽게 출제돼서 운 좋게 붙은 것이라고 겸손을 표현했다.(외부귀인).

전통적으로 사회와 종교는 미카엘이 아닌 라파엘을 사회적으로 훌륭한 인격자로 인정해 왔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라파엘의 성향을 가진 사람보다 미카엘의 성향을 닮은 사람이 훨씬 더 주관적 행복감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카엘은 자신의 타고난 낙관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스스로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라파엘은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비관주의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라파엘은 깊은 우울증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라파엘이 만일 스스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좋은 일은 남의 공으로 돌리고, 안 좋은 일은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진정한 인격자로 인정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생명을 건진 곰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난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 곰이 라파엘을 닮았다면 아마 신이 자신을 살려주었다거나 운이 좋아서 살아난 것처럼 생각하면서 감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 같은 쓸개 빠진 곰을 누가 데려가겠냐?”라는 여우의 핀잔 섞인 농담 속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자신의 부족함 혹은 열등감이 때로는 긍정적인 삶의 자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스스로 못난 자신처럼 보여도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낙천주의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될 수 있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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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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