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한국 교회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많은 화가가 성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중 최초의 초상화는 장발(루도비코) 화백이 19살이던 1920년에 그린 두 점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점은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다른 한 점은 그간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다 2022년 한 교우가 수원교구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에 따르면 이 작품은 장발 화백이 1920년 5월 용산신학교 교장 기낭 신부의 은경축을 기념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양반 복장을 하고 오른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다른 한 손에는 성경을 품은 모습이다.
그런데 기사에 실린 초상화를 보는 순간 직업상 작품의 상태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십수 년 전에 본 적이 있는 작품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작품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는데, 마치 수류탄이나 포탄의 비산된 파편 때문인 듯했다. 과거 이 작품을 보여주신 여성분은 주위로부터 가짜라고 의심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다른 김대건 신부 초상화와 조우하게 되었다. 원효로에 있는 예수성심신학교 성당이 사적(史跡)으로 지정되어 보수 공사가 진행되는 시점이었는데, 성당에 걸려 있던 ‘김대건 신부 초상화’와 ‘유대철 치명도’에 대한 복원 의뢰가 들어왔다. 장발 선생의 작품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사전조사 과정에서 장발 선생의 필치와는 전혀 달라 다른 화가의 작품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과연 누가 이 그림을 그렸는지 의문이 생겼다.
수소문 끝에 한국전쟁 당시 성당이 폭격을 당해 장발 화백이 그린 ‘김대건 신부 초상화’도 심하게 손상됐고, 이후 성심여중고에 근무하셨던 한 미술교사가 원본을 토대로 새로 그린 작품이 성당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이 그린 초상화는 재작년 수원교구에 기증된 장발 선생의 원작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기법적인 차이뿐만이 아니었다. 무궁화와 백합꽃을 그려넣었고, 작품 하단에 김대건 신부의 순교 연도와 시복 연도를 추가했다. 물론 이 작품도 오랜 세월로 인한 손상이 있어 정성스레 복원했던 기억이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미술품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의사가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 연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복원가들은 사고나 노화에 의해 훼손된 작품을 되살리는 일을 한다. 피카소·샤갈·박수근·이중섭 등의 걸작을 직접 냄새 맡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부수적 즐거움과 작가 외에는 모르는 작품의 비밀을 캐내는 재미가 짜릿하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로서 가장 큰 보람은 명작보다는 성화를 복원할 때 느낀다. 미천한 재주이지만 교회를 위해 봉사할 일이 아직 많이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