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이 넘으신 나의 어머니는 가톨릭 여학교 출신이시다. 고등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 나의 언니도 어머니와 동창이 되었다. 이런 영향 때문이었을까? 집안에서 아무도 성당에 다니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집 앞의 성당을 찾아간 것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겨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교리를 배워나가면서 나는 엄마와 자주 언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건 다시 성당에 나가시라는 나의 설득에 당시 이미 20년 가까이 냉담하고 있던 어머니가 그걸 거절하면서였다. 그 후로도 40년이 넘도록 나와 언니는 어머니에게 전교를 해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단호하고 차가운 거절뿐이었기에 나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언제부터인가는 그 희망 없는 기도조차 멈춘 지도 오래였다.
그런데 10여 년 전 인생의 시련 속에서 “하느님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하고 내가 하늘을 보고 원망의 말만 되뇌던 그때, 그리하여 몹시도 불행하던 그때 갑자기 본가로부터 소식이 들려왔다. 어머니가 다시 성당에 나가시는데 심지어 당시 80이 넘은 아버지까지 모시고 가서 세례를 받게 하고 이제 관면 혼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결혼식 날(?) 꽃다발을 들고 찾아간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어떤 신비하고 어떤 대단한 일이 일어났기에 50여 년의 냉담을 풀게 되셨는지 말이다. 어머니가 대답했다.
“글쎄 말이야…. 뭐 큰일은 없었어. 그냥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제 그만 가자, 하고.”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아파트 앞 눈길에서 미끄러졌어. 순간 내 골반은 다 부서지겠다 예감했지. 그런데 누가 내 옆구리 사이로 손을 넣어 나를 잡았어. 나는 눈길에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단다. 순간 눈물이 터지더라. 그게 예수님 손이었던 걸 난 느낀 거야.”
엄마는 아직도 울먹이고 있었고 나도 울컥했다. 엄마랑 이런 대화를 하는 날이 오다니, 꿈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내 머릿속으로 선명한 영상이 떠올랐다. 열네 살인가 그 언저리 어느 날, 무릎을 꿇고 기도했었다. “하느님 저 고약한 아줌마 말고 여학생, 구두 위로 눈이 쌓여 발이 얼어붙어도 매일 같이 그 깜깜한 새벽 미사를 갔던 소녀를 기억해 주세요. 그 소녀가 우리 엄마 마리아에요.” 40년도 넘는 기억이 이렇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너는 이 기도를 잊었어도 나는 그걸 잊지 않았단다.”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그러니까 아무리 나쁘다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가 불행할 수가 있을까, 기도할 수 있는 한 말이다.
글_ 공지영(마리아) 소설가
공지영 작가는 1988년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대표작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이 있으며,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1·2」,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등을 통해서는 신앙과 하느님 체험을 나누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펼쳤다. 한국가톨릭문학상(장편소설 부문)을 비롯한 21세기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