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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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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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의 시작은 축복과 결심과 변화를 위한 때입니다. 그중에서도 축복은 우리가 다른 이에게 해주는 것으로, 그 사람을 위한 것이면서 또한 그가 어떤 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망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좋은 축복은 결심과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떤 축복을 할지가 중요합니다. 세태를 따르는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와 같은 축복의 인사는 그 사람의 새해가 물질과 이득을 따라 매진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하는, 그다지 신앙인답지는 못한 인사가 아닐지 싶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사제가 백성을 축복할 때 사용하도록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세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문장은 두 가지 축복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그리고 뒤의 두 문장은 그것들을 다시 설명해 줍니다. 


다음 문장은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그다음은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입니다.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면 ‘평화’는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여건입니다. 생명의 위협, 시기와 질투, 사회 모순과 혼란으로 나 자신과 이 세상이 평화 속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것을 누릴 수 없습니다. 평화는 모든 복의 전제 조건이며, 그 완성입니다.


이 축복에는 두 번 다 하느님의 얼굴이 등장합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느님과의 만남을 감당할 수가 없어 구약은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이는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축복은 말 그대로 실현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성탄으로, 아버지가 아드님을 내어주시고 아들은 여인에게서 탄생하시어 온전한 인간이 되심으로써, 비로소 이 축복이 실현됩니다.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처럼 우리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는 주님이 성부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리에게 얼굴을 들어 보이시는 주님은 복음 속에서 가난한 이와 병든 이를 자비로이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인간으로 오시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
우리에게도 큰 응답 요구
성모님의 모범 기억하며
하느님 뜻 따라 걸어가길



그러면 우리는 그 평화를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택배 기사처럼 잘 포장된 평화를 건네주고 휙 떠나가시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깊은 초대와 응답, 그리고 친교와 일치의 과정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 어마어마한 사건은 우리에게도 큰 응답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이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은 헛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과 머물며, 그분께 배워서 그분의 길을 함께 걷습니다.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그분을 통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느님 사랑의 일치에 참여합니다. 평화는 선물이지만 그저 받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이 협력하여 완성해 가는 구원 역사 자체입니다.


복음에서 목자들을 비롯한 성모님과 성 요셉, 예수님은 모두 평범하고 가난한 이들입니다. 구유에 누우신 한없이 무력하고 무고한 아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표징입니다. 그분은 천사의 찬양을 받으시는 세상의 구원자입니다.(루카 2,8-14 참조) 목자들이 전한 이 소식에 모두가 놀라워하지만, 경탄은 순간적인 느낌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이 놀라운 사명을 곰곰이 마음에 간직하십니다. 아홉 달 동안 뱃속에 품어주셨던 주님을 이제 가슴에 품으시고, 그분과 함께 걸어갈 내일의 사명까지 마음에 품으신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로서 주님과 함께 앞장서 걸으실 준비를 마치신 것입니다. 이런 성모님의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어떻게 기도하고 축복하고 결심하고 살아야 할지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눈을 감고 침묵 중에 곰곰이 새겨봅시다. 두려움도 경탄도 분노나 슬픔도 근심 걱정도 잠시 가라앉히고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을, 그리고 부족하기만 한 우리를 모아 주시어 구원의 길, 평화의 길, 희망의 길을 함께 걷도록 불러주신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주님께 드립시다. 그것은 분명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이 땅에서 선한 뜻을 지닌 모든 이가 주님 평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 14)



글 _ 변승식 요한 보스코 신부(의정부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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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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