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복음의 길 _ 제주 이시돌 피정 (7)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제주 성이시돌 목장 새미은총의 동산 조형물)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요한 2,1-5)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하셨다.”(요한 2,7-8) 주방장이 이것을 맛보았을 때에 물이 포도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좋은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네 개의 복음서를 간략히 살펴보더라도, 예수가 먹고 마셨다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당시에 누군가와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들을 인정하고 또 그들과 함께 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식탁 친교’라고 불리는 것으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잘 나가고 교만한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과 기꺼이 먹고 마시는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는 어느 누구라도 차별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 당시 사람들이 죄인으로 여기거나 소외시킨 이들과 자주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비전과 일치하는 행동이었고, 더 나아가 그 식사 자체가 하느님 나라 구현의 징표였습니다. 예수가 나눈 두 가지 중요한 음식은 그의 첫 번째 기적인 카나 혼인 잔치의 음식, 그리고 죽기 전 제자들과 함께 하며 종처럼 그들 발을 닦아주던 파스카 음식이었습니다.
카나에서 우리가 예수와 함께 결혼 잔치에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저는 적어도 여섯 개의 다른 나라 결혼식에 참석해보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결혼식 도중에 술이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카나 결혼잔치 이야기를 묵상해보면서 저는 어떻게 술이 떨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상상해보았습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이 일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입니다.(예수에게는 이미 먹보요 술꾼이라는 명성이 있었지요) 이 점이 왜 어머니 마리아가 그에게 술 떨어진 사실을 알렸는지를 설명할 수도 있으니까요. 처음에 예수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배경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것 같구요. 그는 결코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는 결혼잔치를 위해 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이전에 광야에서의 유혹을 떠올려봤을 때, 돌을 빵으로 바꾸는 것과 여기 카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의 차이점 무엇입니까? 왜 하나는 안 하고 다른 하나는 합니까?
광야에서의 유혹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었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은 신혼부부를 곤란하지 않기 위해서 한 것이고, 또한 공동선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세상 여러 곳에 발현하여 메시지나 가르침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듣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의 유일한 가르침은 이 카나 혼인 잔치에서 하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입니다. 만일 이 가르침과 다르다면, 그 어떤 메시지도 성모 마리아로부터 나왔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일부 그리스도교에서는 술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술의 남용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합당하고 적당하게 사용된다면 술은 여러 이로움도 줄 수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는 당신의 행동으로 술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동정으로 사는 것을 결혼생활보다 더 성스럽고 나은 삶이라고 장려하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성은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또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있어 유혹의 근원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때까지도 출산한 여자가 교회 전례에 다시 참석하기 위해서는 교회로부터 축복 받아 깨끗해져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에 대한 왜곡된 이해로부터 온 것입니다. 즐길 만한 것들은 모두 성스럽지 않음이나 죄악을 나타낸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초기 교회 시대에 유행했던 세속적 철학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교회가 예수 본래의 길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신랑 신부 이 두 사람이 교회 안에서 고백한 혼인동의는 혼배성사의 핵심이며, 부부간의 결합을 통해서 혼배성사의 완성을 이룹니다. 실제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랑의 행위인 성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성생활은 하느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아주 거룩한 행위입니다.
글 _ 이어돈 신부 (Michael Riordan,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제주교구 금악본당 주임,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