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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잃지 말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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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1일 새벽 미국 네바다주, 벤 옥슬리라는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직 벤만이 죽었고 용의자는 그의 곁에서 잠자던, 재혼한 지 2년 된 아내 멜리사가 되었다. 이 의심은 벤이 거액의 사망 보험금을 들어놓은 것이 알려지며 더 확실해졌다.


벤에게는 전처에게서 낳은 딸 엘리사가 있었는데 엘리사는 세상에 없는 아빠 바라기였다. 새엄마가 용의선상에 오르자, 당국은 6세의 엘리사를 친엄마에게로 격리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새엄마가 범인이라는 언론과 친엄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경찰에게 사건이 있던 그날 밤 누군가 밖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고 어떤 사람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증언하게 된다.


6세 소녀의 이 믿기 힘든 그러나, 단호한 증언에 의해 경찰은 사건을 재수사 하게 된다. 죽은 벤과 원한이 있는 사람들이 조사받게 되었는데 벤에게는 평소에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없었다. 단 한 사람, 엘리사의 친모 돈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돈은 그날 남자 친구와 함께 집에 머물렀다고 하고 남자 친구 역시 그렇게 대답했다. 이 둘에게는 마약을 비롯한 다수의 전과가 있었지만, 뚜렷한 살인의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돈의 아들이며 엘리사의 이복 오빠가 경찰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군대에 입대하는 길이었다. 망설이다가 그는 말했다. 사건 전날 자신의 엄마 돈이 남자 친구와 벤의 살인을 모의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이다. 이로써 사건은 극적으로 전환되어 먼저 남자 친구가 이어 친엄마 돈이 살인을 자백한다. 그날 밤 6살 된 엘리사가 본 어둠 속의 사람은 자신의 친엄마였던 것이다.


돈은 무기징역에, 실제로 총을 쏜 남자 친구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처해진다. 이 살인으로 아내인 멜리사에게는 물론 아빠만 바라고 살던 어린 엘리사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새겨졌다. 엘리사는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지 못했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형이 확정될 때까지 4년의 세월이 흘러 10살이 된 엘리사는 뜻밖의 부탁을 재판장에게 하게 된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인 엄마의 남자 친구를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만남이 있던 자리에서 엘리사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기를 바라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친엄마마저 감옥에 보낸 이 소녀의 얼굴은 담담했으나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새엄마의 품에 안겨 함께 울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이 새엄마와 10세 소녀는 이렇게 하여 치유의 어려운 첫발을 내디딘다. 치유의 시작은 비극의 받아들임 그리고 용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엘리사의 이복 여동생, 이제는 고아가 된 브랜디를 입양하기로 한 것이었다. 짧은 행복 뒤에 남편을 잃어버리고 경찰과 언론에 의해 살인자로까지 몰렸던 멜리사는 이제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훗날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그날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좋은 추억을 더 많이 생각하려고 해요. 지금도 그가 아주 그립지만 어느 때보다 그가 아직도 날 사랑하고 있는 걸 느껴요. 그에게 딸 엘리사와 평생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거죠. 사랑하니까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엿한 가족입니다. 저녁이면 모여 따뜻한 포옹을 하니까요.”


참혹한 범죄 속에서 상처 입은 여인과 소녀가 건져 올린 작고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되새겨보며 보내는 나의 성가정 축일은 복되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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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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