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촉하던 바람이 불던 1986년 2월16일 다락골 산꼭대기 줄무덤길 흙 속에서 삐죽히 나온 고상 달린 묵주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날 부산 전포동본당 신자 40여명과 함께 성지순례를 온 이상자(베로니카) 자매님이 발견하였다.
이로써 1944년 9월5일 예산주임 유봉구(아우구스티노) 신부님과 유한주(요한) 신부님의 다래골 방문기(경향잡지 1949년 4월호 54쪽 이하 참조)부터 시작되어 1952년부터 오기선 신부님에 의해 공론화된 다락골 줄무덤이 순교자 묘지라는 신빙성을 갖게 되었다.
다락골 제1~3줄무덤에는 파묘되어 유실된 3기를 포함하여 40기가 있다. 경주 최씨 종산에 묻혀 있으니 묻히신 순교자들이 경주 최씨라는 것만 알 뿐 모두 무명이다. 묵주 주인 또한 무명이다.
최양업 신부님은 청양 다락골에서 태어나 열 살이 되던 1830년께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묵주 주인도 같은 시기의 사람일 것이다.
순교자 묘나 박해시대 신자들 묘를 열어 보면 많은 경우 묵주나 십자고상이 발견된다.
박해시대에 언제 잡혀서 죽을지 모르던 신자들에게는 묵주가 성모님께서 자신들을 예수님과 하나로 묶어주는 튼튼한 끈 또는 하느님 나라에 오르는 밧줄이었던 것 같다. 그같은 아름답고 거룩한 인습이 계속되어 오늘날까지도 신자들은 묵주를 쥐고 선종하고 또 입관을 한다.
창조 이래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었지만 그 대부분은 무명인들이다. 무엇이든 무명에는 천국의 향기가 서려 있다.
다락골 순교자들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지만 묵주를 남겼다. 그분들은 묵주를 하느님과 묶는 끈으로 알고 죽었다. 다락골 순교자묘에서는 하느님만을 바라며 묵주와 함께 무명으로 살던 이들의 향기가 난다.
남모르게 넘기는 묵주 한 알 한 알은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는 향기나는 징검다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