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9)
태양 볕이 내리쬐는 팔레스티나 촌구석에서 예수님은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왜 뽀얀 유럽 백인의 얼굴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절대적 가치가 되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자신들의 얼굴로 만들었습니다. 백인의 얼굴 속에 절대적 가치의 기준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월한 백인은 이제 세상을 지배할 정당한 권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얼굴을 집어넣은 예수님의 얼굴로 그들은 세상을 보편 법칙으로 지배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권력과 이익의 도구로 삼은 것입니다. 이런 기만적 행동은 서양 제국주의 시대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기만적 행위가 일어날 수 있음을 장자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을까요?
푸르디푸른 보리가 비탈진 무덤가에 무성하구나.
살아서 남에게 베풀지 않았는데 어찌 죽어 입에 구슬을 물고 있는가.
靑靑之麥 生於陵陂 生不布施 死何含珠爲
이 구절은 유자(儒者)가 부유하게 살다 입에 구슬까지 물고 죽은 자를 보며 그의 욕심과 사치를 『시경』의 내용을 읊으며 풍자, 비판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유학의 가르침에 따라 그가 남긴 재물로 인의(仁義)를 실천코자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장자』의 「외물」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전체 내용을 보면 오히려 유자들을 비판하는 장자의 반전 드라마입니다.
유학자들이 입에 구슬을 물고 죽은 자의 무덤 앞에서 도굴을 시도합니다. 스승쯤 되는 자가 자기 권위로 제자들을 재촉합니다. 그러자 제자쯤 되는 자가 위의 구절을 읊으며 서둘러 입 안의 구슬을 도둑질합니다. 경전의 구절을 읊고 있지만. 자기들 구미에 맞는 구절들로 도둑질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많을수록 정의를 구현하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장자는 유자의 위선적 행위로 지적합니다. 세상은 지식이 많을수록 지도자의 위치가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높이 쌓은 지식이 도덕적 가치, 사랑의 가치도 높여줄까요? 장자는 말합니다.
유자들은 시와 예로써 무덤을 도굴한다. 『장자』 「외물」
儒以詩禮發?
앎(知)이 많다고 모두가 도둑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도층이 권력이든, 명예든, 재물이든 정의보다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지식은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높은 법률가는 법으로 도둑질하며, 높은 정치인은 정치로 도둑질하고, 높은 의사는 의술로 도둑질하며, 높은 성직자는 경전으로 도둑질하고, 높은 경찰은 국민의 안전을 이유로 도둑질합니다. 적극적 도둑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안위와 자리보전을 위해 도망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책임은 지지 않고 권위만 누리려는 ‘자리 도둑질’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유자들을 비판하는 장자를 유자들의 아버지 공자에게 물어보면 어떤 말을 했을까요? 공자 또한 그들을 소인이라 나무랐을 것입니다. 공자는 “군자는 정의로움(義)에서 깨우치고 소인은 이로움(利)에서 깨우친다.”(君子 喩於義 小人 喩於利, 『논어』 「이인」)고 했으니까요.
예수님은 구원받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 하시며, 집주인이 문을 닫아버리면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인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며 그들을 ‘불의’한 자라고 말할 것이라 합니다.(루카 13,22-30 참조) 불의한 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자, 들어가려 힘쓰지 않는 자입니다. 여기서 ‘힘써라’(아고니제스데)는 운동경기장이나 투기장에서 전력투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온 마음과 몸과 정신을 다한 투쟁적 행동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탈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난 이야기에서 셋째 종이 쫓겨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마태 25,14-30 참조) 셋째 종은 돈을 잃는 것이 두려워 땅에 묻어두었다 쫓겨납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 사투를 벌이고 인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정의가 아니라 이익을 생각하면 행동하는데 두려워합니다. 아마도 그런 이들은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씀의 지식(知)으로 정당화해 높은 지위를 도둑질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 하면서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반석의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루카 6,49 참조) 세상의 강물이 곧 들이닥치면 겁먹고 무너질 사람들인 것이죠. 유자들은 시와 예로써 도둑질하는데 당신은 무엇으로 도둑질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나 자신이 스스로 그 당신이 되어 자문해봅시다. 무덤 앞에서 망자를 위해 기도하는가? 망자의 구슬이 탐나 기도하는가? 시와 예, 법, 경전, 정치, 생명, 자유, 평등, 인권의 얼굴은 망자의 옥구슬이 아닙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