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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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신앙인들은 모든 재물과 사랑을 나눴다

[저는 믿나이다] (11) 초대 교회의 삶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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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도들의 신앙과 성사, 성령의 은사와 함께 모든 것을 공동 소유하고, 사랑을 공유하였다. 지거 쾨더 작 ‘죄인의 식사’.

넷째, 초대 교회 신자들은 모든 것을 공동 소유하였습니다.(사도 4,32 참조) “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의 공동 소유로 여겨야 하며, 가난한 이와 이웃의 불행을 도와줄 준비와 열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자산 관리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952)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과 재물에 대한 사랑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야고 5,1-3)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사목 규칙에 “가난한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들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왜 가난한 이들을 이렇게 환대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가르쳤고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가난한 이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배척하신다는 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2)고 하셨습니다. 나아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고 하셨습니다.

잠시 「가톨릭교회 교리서」 내용을 곱씹어 보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사랑은 변함없는 전통에 속한다. 이 사랑은 참행복의 복음, 예수님의 가난,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배려하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할 의무를 지우는 동기들 가운데 하나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 사랑은 물질적 가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다양한 형태의 가난에도 미치는 것이다.”(2444항)

교회는 또 이렇게 가르칩니다. “물질적 궁핍, 부당한 억압, 육체적 정신적 질병, 끝으로 죽음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인간의 비참은 원죄 이후 인간이 놓이게 된, 타고난 나약한 처지와 구원의 필요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표지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참은 구세주 그리스도의 연민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이 비참을 짊어지시고, ‘형제들 중에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40.45)과 같아지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참에 짓눌리는 사람들은 교회의 우선적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교회는 초기부터 많은 지체들의 과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하고, 해방시키려고 노력해 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48항)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형제애의 증거로, 또 하느님께서 복을 주시는 정의의 실천으로 기쁘게 행한 이 아름다운 전통을 어찌 자랑하지 않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다섯째, 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랑을 공유하였습니다.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6) 바오로 사도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삶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 가운데서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로마 14,7-8)

이웃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사랑 그 자체이시죠. 곧 하느님 사랑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래서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한 사랑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행위가 바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곧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 활동을 펼치기에 앞서 아버지 하느님께 당신을 맡기시는 기도를 늘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느님 뜻에 협력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고 기도하셨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를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덕의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새로운 계명으로 삼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끝까지’(요한 13,1) 사랑하심으로써 당신께서 받으시는 성부의 사랑을 드러내신다. 제자들은 서로 사랑하여 그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요한 15,9)하고 말씀하시며, 또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라고 말씀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23항)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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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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