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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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사회 갈등과 대립, ‘화음의 코드’로 풀어가야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02. 막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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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내 생각과 같은 편에 서서 ‘좋아요’라고 하는 사람은 ‘옳은 존재’이고, ‘싫어요’라고 하면 ‘틀린 존재’가 되는 경향이 짙다. 지난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의결정족수와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를 보고 또 틈만 나면 자꾸 보게 돼요. 이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면서도 이렇게 재미있는 막장 드라마가 또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최근 우리나라의 돌아가는 정국을 보면서 지인이 던진 자조적인 농담이다. ‘막장 드라마’가 무엇인가? 개연성도 없고 비현실적이고 상식을 뛰어넘는 각본을 통해 극적 파국으로 몰고 가는 드라마다. 그런데 보는 사람은 욕을 하면서도 끊지 못하고 계속 본다. 불현듯 요즘 뉴스 보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와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 연구학자인 이엔 앙(May Ien Ang)은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가 드라마 속 갈등과 대립, 그리고 사랑과 복수 등의 보편적 감정에서 부분적인 일체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비현실적인 스토리 전개와 저속한 인물들을 조롱하면서 스스로를 우월적 존재로 인식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도 서로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난하고 또 공격하면서 스스로 우월감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뉴스 매체는 우리의 사회적 갈등이 ‘막장 드라마’에 비유될 정도로 격렬하고 감정적인 대립을 부각시킨다. 예측 불가능한 험난하고 거친 절벽들로 둘러싸인 불안감으로 인해 자꾸 뉴스를 보게 된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내 생각과 이념에 맞는 부분만 공감하고 싶어 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와 알고리즘으로 인해 비슷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특정 이슈를 공유하면서 더욱 감정적이고 편향적이 된다. 그러면서 ‘좋아요’의 ‘같음’을 가까이하면서 다른 의견과 생각을 표출하는 사람들의 ‘싫어요’의 ‘다름’을 멀리하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렇기에 한 공동체에서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세상이다.

과거에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똑같은 ‘상품’을 찍어내는 대량생산 혁명 시대를 살아왔다면, 현재는 알고리즘에 의해 필터링 된 이념과 취향으로 똑같은 ‘사람’을 찍어내는 맞춤형 정보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는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유니크함과 패션을 추구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외적 ‘다름’을 추구하면서도 나와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나를 중심으로 한 ‘좋아요’의 맞춤형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싫어요’라고 하는 다른 사람과의 접점은 점점 축소된다. 원인이 없는 결과와 현상만을 나열한 맞춤형 정보에 의해 생각과 이념마저 통조림처럼 닮은꼴로 생산되면서 편향적인 자기중심적 세상에 빠져든다.

‘다름’은 수많은 영역으로 확장되어가는 새로운 경험의 통로다.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다. 그런데 같지 않은 사람이 왕왕 틀린 사람이 된다. 나의 손가락이 밖으로 뻗어 나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순간, 나와 같지 않음이 ‘틀림’이 된다. 내 생각과 같은 편에 서서 ‘좋아요’라고 하는 사람은 ‘옳은 존재’이고 ‘싫어요’라고 하면 ‘틀린 존재’가 되고 만다. 남과 나를 다르게 표현해주는 상품은 선호하면서도 생각이나 취향 그리고 이념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것을 존중하고 경청해주는 자유와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갈등과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신념과 이념을 지닌 집단을 거칠게 단죄하면서 ‘다름’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막장 드라마는 계속(to be continued) 될지도 모른다.



<영성이 묻는 안부>

우리는 흔히 ‘코드가 맞다’라는 말을 하지요. 코드가 암호·부호의 코드(code)이기도 하고, 화음의 코드(chord)일 수도 있겠는데요. 화음의 코드로 맞춰가야 하지 않을까요? 코드는 높이가 다른 여러 음과 서로 다른 음색과의 어울림이고 화합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나와 이해관계가 편하고 나와 유사한 소리를 내는 사람과의 코드만을 원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성향이 유사하고 잘 통하는 사람들, ‘싫어요’라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과 코드를 맞추는 일은 참 쉽고 편하겠지요. 그럴 때 나오는 소리는 밋밋한 단음일 것이고요.

하지만 서로 다른 소리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화음의 코드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름’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예술이지요. ‘같음’의 덫에 걸린 편협한 세상은 타협과 공존보다는 배제와 갈등으로 결국 모두가 손해 보는 결과를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고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다름’에 대한 존중으로 ‘싫어요’에도 귀와 마음을 여는 신앙인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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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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