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사람은 모두 철학자가 된다」. 최근 필자가 동료 교수와 함께 출간한 철학상담 관련 책 이름이다. 상처와 철학자가 어떤 관계이기에 상처 입은 사람은 모두 철학자가 된다는 것일까?
여기서 상처란 당연히 마음의 상처를 의미한다. 마음의 상처는 육체의 상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띤다. 여러 질병에 의한 육체의 상처는 어느 순간이 되면 아무 흔적 없이 아물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렇지 않다. 마음의 상처는 연약한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면서 다 나았다 싶다가도 영적으로 메마를 때면 언제든 다시 도져 우리를 괴롭히곤 한다. 그래서 영혼(마음)의 상처는 마치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와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상처받은 영혼이 자기를 위로하며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우리가 이 답을 궁극적으로 철학적 사유에서 찾는다면, 상처 입은 사람은 모두가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삶은 왜 이토록 고통스럽고 힘들며,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는 그토록 깊은 것일까?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무수한 존재자들이다. 이 존재자들은 주체인 나를 넘어 현존해 있는 초월자들이다. 다시 말해 주체인 나와 객체인 존재자들 사이에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큰 간격이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은 나와 타자 사이에 놓여있는 이 큰 간격을 극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본질 직관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장악함으로써 지식 안에서 나와 타자를 끊임없이 일치시키려 한다. 내가 이해한 타자에 관한 지식이 곧 타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된 세계 안에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현실은 때때로 나의 기대를 벗어난다. 타자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하는 그 순간, 타자는 이미 내 지식의 한계를 벗어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존재와 관련해 우리 지식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존재는 항상 나를 초월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신비의 대상이기에 우리가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엄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한된 지식을 갖고 절대적 진리 추구와 이상(理想)적 일치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내 밖의 존재를 완전히 장악하려 무던히 애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좌절하고 상처받는다는 데 있다. 인식하는 주체로서 존재를 파악하고 이를 장악하려는 것이 인간 본질임에도, 역설적이지만 이 때문에 인간은 상처받는다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우리 각자가 고유한 개체로서 근본적으로 서로 다름과 그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상대가 나의 기대를 저버리거나 나의 바람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상대가 나에게 저항하고 나를 거부할 때, 상대가 나를 인정하지 않거나 이해해주지 못할 때, 각자가 본래의 자기로 있지 못하고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할 때 우리는 쉽게 절망하고 상처받는다.
우리가 상처받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관계를 올바로 설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와 사물과의 관계, 나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절대자와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는 일이야말로 건강한 삶을 위한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