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인생의 길 (11)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이란 바로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용서하는 아름다운 사랑, 그것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돈과 권력, 명예나 재물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만이, 용서하는 아름다운 사랑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랑이란 단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수 나훈아 씨가 부른 노래의 가사를 통해 정의해 보겠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어떤 부류의 사랑이든 고통 없는 사랑이란, 눈물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일까요?
사랑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다른 두 글자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할까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용서’입니다.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은 진정한 용서를 통해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이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든, 젊은 남녀의 사랑이든, 나아가 친구 간의 사랑이든, 이웃 간의 사랑이든 희생 없는 사랑, 고통 없는 사랑, 눈물 없는 사랑, 용서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치시고자 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어쩌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불가능한지도 모릅니다. 불가능을 넘어 너무나도 가혹하리만큼 고통스러운 말입니다. 한마디로 이 말씀은 나약한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이나 이웃 사람들도 진정으로 사랑하기가 어려운데, 미워하는 사람들, 꼴 보기 싫은 사람도 진정으로 사랑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내 가족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기란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원수를 사랑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까요?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하느님의 힘,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될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하느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미워하는 사람, 증오하는 사람, 시기와 질투의 상대를 위해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대외협력본부장)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