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지붕과 종탑, 벽돌조 벽, 아치…. ‘성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유럽의 전통적인 성당 건축 양식에서 온 이미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옛 모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성당 건축들도 등장하고 있다. 제1대리구 보정성당도 전통적인 성당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성당이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촌로73번길 24. 아파트 단지 사이로 마치 여러 개의 정육면체가 쌓여 높이 솟은 듯한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위로 십자가가 올라가 있었다. 보정성당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은은한 상아색의 외벽이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라면 사방을 덮은 ‘라임스톤’의 색을 기억한다. 라임스톤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많이 나는 석회암이다. 이스라엘의 옛 건축물들은 대부분 이 라임스톤으로 지었고, 오늘날에도 예루살렘의 건물은 외벽을 라임스톤 색으로 통일하고 있다. 그래서 이 라임스톤 색의 대리석은 ‘예루살렘골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성당 앞 안내문을 보니 이 라임스톤 빛깔 외벽제의 정체는 베들레헴·헤브론 지역에서 난 대리석이었다.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성당 외벽의 돌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을 인근에서 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마 예수님도 이 라임스톤 색이 가득한 마을에서 생활하셨을 터다.
성당에 들어서니 길게 뻗은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성당 서쪽면에 위치한 계단은 1층에서 3층까지 한 방향으로 완만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돼있었다. 흔히 계단 이용은 힘들고 다소 답답하기 마련이다. 지그재그 형태의 계단은 효율적이지만, 앞이 막혀있어 다소 답답하기도 하고, 층을 오르면서도 같은 풍경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정성당의 계단은 앞이 길게 탁 트여있는데다 라임스톤 색의 벽 사이로 스테인드글라스의 채광이 비치니 3층까지 오르면서도 기도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계단을 끝까지 다 올라오니 빛이 밝아오는 듯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집을 향해, 밝아오는 빛을 향해 오르는 신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계단이다.
성당 제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제대는 제대 정면으로 난 큰 창이나 별도의 전기조명 없이도 밝았다.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
는 제대 측면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장에 난 창의 반사광 덕분이다. 특히 제대 좌우측, 동서방면으로 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사선으로 쏟아지는 색색의 빛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오전에서 오후까지 시간에 따라 움직이면서 제대를 빛으로 꾸미고 있었다. 밝은 제대에 비해 다소 어두운 신자석은 제대와 제대에 모셔진 성체를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묵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으로 거듭났다.
공동체의 모습을 담은 성당
보정성당은 순례하고 기도하기에도 좋은 성당이지만, 무엇보다 지금 이 자리를 살아가는 신자공동체의 모습을 담은 성당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하다.
성당 전체의 모습은 언뜻 불규칙하게 직육면체를 쌓아 올린 듯한 모습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동편에서도 세로로 긴 직사각형 다섯, 서편에서도 세로로 긴 직사각형 다섯이 눈에 띄게 보인다. 이 긴 다섯 개의 직사각형은 손가락을 나타낸 것으로, 양쪽에서 가지런히 손가락을 모아 하늘을 향한 모습, 바로 성당 전체가 기도하는 손의 형상으로 디자인됐다.
전통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 모습에서 탈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정관념을 떠나 현대적인 건물로 성당을 기획하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그러나 현대적인 디자인 안에서도 전통적인 의미를 재해석해 건물의 수직성을 통해서 고딕 양식 성당의 높은 첨탑이 드러내고자 했던 하느님의 신성함과 하느님을 향한 교회의 마음을 담아내고자했다.
동시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평면 구성을 통해 주님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표현했다. 무엇보다 미사만 드리고 떠나는 성당이 아니라 언제라도 머물고 싶은 성당을 만들고자 고심했다. 본당은 1층에는 성모동산과 북카페를 만들어 신자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삼았고, 2층의 교리실, 회합실 등 신자들이 모일 수 있는 방을 동쪽 공원 방향으로 배치해 밝고 또 자연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런 공동체의 마음이 담긴 성당은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으며 인정을 받았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은 건축의 본질과 시대의 정서, 기능성이 구현된 건축물을 발굴·시상하는 대화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교구 세곡동본당, 대전교구 원신흥동본당 등 전국의 여러 본당에서 보정본당을 답사하고, 모티브를 얻어 새 성당을 건축하기도 했다. 보정성당은 하느님을 향한 공동체의 모습을 담은 성당, 현대적 성당 건축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