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세계 내 존재’로서 그 안에서 만나는 존재자와 관계하며 자기를 실현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자연에 던져지기보다 세계에 던져진다. 인간이 자연이 아닌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은 ‘철학적 인간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동물이 생물학적으로 자연에 잘 적응하도록 진화되어 있다면,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생물학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인간은 자연에서 열등한 존재다. 스위스 동물학자 포르트만(Adolf Portmann, 1897~1982)에 의하면 인간은 출생 당시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1년 일찍 조기 출산된, 생리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다. 또 독일 철학자 겔렌(Arnold Gehlen, 1904~1976)에 의하면 자연환경에 잘 적응된 신체 기관을 갖고 있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비전문화된 신체를 가진 ‘결핍 존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런 인간의 열등한 특성이 오히려 인간의 고유성을 드러내게끔 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정신(Geist)’이다. 1928년 출간된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로 현대 철학적 인간학의 효시가 된 독일 철학자 셸러(Max Scheler, 1874~1928)는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서 충동과 환경에 구속받지 않으며, 이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을 ‘세계가 열려 있음(Weltoffen)’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에서 ‘열린 세계’를 가진 유일한 존재다.
인간이 ‘세계를 가진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계는 그대로의 자연과 다르게 인간이 만든 인공적 구성물이다. 인간은 인공적 세계 없이는 자연에서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을 도구화함으로써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고유한 창조 행위도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폭력적이며 파괴적이기에 우리는 과도한 욕망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상처가 되는 삶의 문제들이 바로 이 세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세계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통해 구성된다. 인간은 정신을 통해 한편에서는 역사로서의 문화, 다른 한편에서는 철학으로서의 이념을 통해 세계를 구성한다. 물론 이 문화와 이념은 언어로 표현되며, 전통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로 전승된다. 세계는 과거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지혜에서 비롯된 이해요, 우리가 오늘 사는 세계는 과거로부터 전승된 ‘이미 이해된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세계의 특성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세계 안에서 긴장과 충돌의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이는 우리가 세계 안에서 자기를 실현할 때 서로 다른 이해와 해석의 차이와 엇갈림에서 오는 저항과 한계상황의 경험 때문이다.
과거의 전통 및 전승과 현재의 현존 및 실존 사이의 긴장, 서로 다른 역사 문화와 철학 이념 사이의 긴장, 보편적 지식과 고유한 경험 사이의 긴장, 집단의식과 개인의식 사이의 긴장 사이에서 우리는 자주 고통과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서로 상처받지 않고, 또 함께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뿐만 아니라 경계 지어진 자기 세계를 넘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듯 하나의 세계를 깨트리지 않고서 우리는 결코 새롭게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