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미스트롯 강혜연의 꿈CUM (1)
강혜연(아녜스)
어린 시절 강혜연(아녜스)은 몸이 왜소했다. 친구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외형. 그러다 보니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면 안경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어느 날. 강혜연은 강해지기로 했다.
“이젠 울지 말아야지!”
그 날 이후 강혜연은 달라졌다. 여자아이들이 하는 고무줄놀이를 접었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팽이치기 놀이를 했다. 달라진 강혜연의 모습,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씩씩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기억하는 초등학교 동창들은 강혜연이 과거 아이돌(걸그룹 베스티)로 데뷔했을 때 말했다. “너, 너무 예쁜 척하는 것 아냐?”
어쩌면 아이돌 가수라는 옷은 강혜연에게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랬다. 강혜연에게 맞는 옷은 따로 있었다.
“트로트 가수가 되면서 이제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요. 과거 아이돌 가수를 할 때와 달리 제가 가지고 있는 모습, 삶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진지하게 노래 부를 수 있어서 이제야 제 길을 제대로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던 초등학교 시절, 강혜연을 무대 체질(?)로 바뀌게 한 것은 노래였다. 그 노래의 돗자리를 깔아준 곳이 성당이었다.
“인천교구 용현동성당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가대 반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어요.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받다 보니 자연스레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강혜연은 성당에서 주목받는 아이였다. 당시 인천교구 용현동본당 보좌 신부였던 차호찬 신부님(현 인천교구 운양동본당 주임), 수녀님과 본당 어르신들, 또래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강혜연은 성당의 아이돌 스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강혜연이 가수의 꿈을 키우는 계기가 찾아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대학의 축제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가수 마야의 노래에 수많은 이가 환호하고 함성을 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멋져 보였습니다. 나도 저 무대 위에 서고 싶었습니다. 이후 장래 희망란에는 늘 ‘가수’라고 적었습니다.”
가수의 꿈은 중학교 때 이후에도 이어졌다. 성당에서건 학교에서건 무대가 생길 때면 늘 그 자리에는 강혜연이 있었다. 아무도 강혜연의 노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잘 불렀고, 사람들은 그런 강혜연을 예뻐했다. 강혜연은 음악의 길을 걷기로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실용음악 입시 준비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 인천 지역 청소년 가요제에 나가서 상도 받았다.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이런 가운데 강혜연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난다. 한 방송사에 가서 노래를 했는데 돌아온 것은 혹평이었다. ‘기존 가수 흉내만 내지 말고 본인의 노래를 하세요. 처음부터 다시 노래를 시작하세요.’ 지금까지 강혜연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날 강혜연은 큰 충격을 받았다.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엄마에게 노래를 그만두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때 지적을 받지 않았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충고는 큰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자만심 가득했던 제가 겸손하게 음악을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수가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실용음악 입시를 준비하던 어느 날, 한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본다고 해서, 별생각 없이 MP3에 목소리를 담아 보냈다. 당장 정식 오디션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걸그룹 트레이닝이었다. 몸치로 불릴 정도로 춤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주어진 일에는 젖먹던 힘까지 쏟아내는 강혜연이다. 그렇게 2012년 강혜연은 아이돌 가수로 데뷔를 했다.
“운이 좋아서 좋은 회사를 만나 가수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강혜연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츰 잊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접한 트로트에서 강혜연은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강혜연(아녜스)
글 _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