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전대섭의 공감 (18)
작년 한 해는 유독 다사다난했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제 개인사가 그렇습니다. 이른 봄부터 준비하던 문집(에세이) 출간이 여름들 무렵 느닷없이 중단됐습니다. 부끄러워서 그랬습니다. “내가 가난하게 살지 못하면서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가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뻔뻔하지 못한 제 성격 탓도 큽니다.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른 이의 글을 읽고 공감할 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지더군요. 책도 많이 내고 공부도 많이 한 지인 신부님께 원고를 몽땅 드리고 의견을 구했습니다. 고맙게도 신부님은 원고를 일일이 읽어보시고는 단락 연결까지 꼼꼼히 짚어주시며 말했습니다. “괜찮은데. 가족과 지인들에게 선물하기에 좋을 것 같다”라고.
그 무렵 꽤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내적 고민도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던 때 입니다. “신앙도 해석이다. 설명해주는 이성보다 비추어주는 신앙, 이것이 길이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기도는 그저 감사함”이라는 확신도요.
그 와중에 지난해 8월 말 큰 사거리에서 잠시 집중력을 잃고 신호위반을 해 교통사고를 크게 낼 뻔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수호천사의 도움이라고 믿습니다. 저의 판단과 대처로 모면했다고 하기엔 순간의 상황이 너무 급박하고 순식간이었습니다. 다만, 당황하고 처음 겪는 일이라 뒷수습을 못 한 탓에 민형사상 다툼을 하느라 한 달 넘게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책 내려던 마음이 또 바뀌어 그냥 마음 편하게 내려놓았다가 아내와 지인의 권유로 가을 들어 급히 다시 출판을 서둘렀습니다.
지난 10월엔 제가 환갑을 맞아 가족과 조촐한 파티를 했습니다. 딸들이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를 준비해 많이 놀랐습니다. 막내딸이 환갑 맞은 아빠에게 주는 감사장을 낭독하다 목이 메는 바람에 그만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근무지로 오는 차 안에서 저는 ‘행복’이란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행복에 대해 참 많이 듣고 말하고 쓰기도 했습니다만, 정작 행복이 뚜렷한 모습으로 제 가슴에 각인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유언도 깊이 와 닿았습니다. 변하지 않고 영원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만큼 큰 행복이 또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하느님 사랑을 인간이 알도록 하는 일보다 소중한 일 또한 없을 것 같습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