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 수용
지난 회에서 살펴보았던 헬레니즘 문화로부터 유래한 이원론을 따르는 인간관은 우리의 경험과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에 여러 차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결국 13세기에 이르러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극복되기에 이른다. 그는 인간이 원천적으로 전적인 단일성을 지닌다는 성경의 관점을 12세기부터 새롭게 유행한 그리스 철학적 개념을 통해 정리했다. 이 작업은 성 토마스가 서방 세계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의 인간관을 계승해 변형시킴으로써 착수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개의 불완전한 실체가 결합돼 비로소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완전 실체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영혼 그 자체만으로는 아직 인간이 아니고 육체와 함께 할 때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육체와 영혼의 활동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지어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혼을 통해 사유하고 배우며, 사물을 관찰하는 지각 행위는 영혼이나 육체의 한 측면에 제한되지 않고 육체를 통해서 영혼이, 영혼을 통해서 육체가 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나름대로 고유한 도구를 가지고 자신의 창작 활동을 수행할 수 있듯이, 영혼도 각자 고유의 육체를 통해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에게 고유한 정신, 즉 사유 능력을 영혼과 구별했다. 바로 이 지성과 육체의 형상인 영혼의 관계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못함으로써 이후에 많은 혼란이 나타났다. 성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와 정신을 개방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불분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교정함으로써, 인간의 단일성을 강조하는 성경의 관점과 상응하는 인간관을 피력했다.
성 토마스의 통합적인 인간관
성 토마스는 “인간은 영혼만이 아니고 영혼과 육체로 결합된 어떤 것임이 명백하다.”(STh I,75,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다. 이어서 ‘영혼이 육체의 유일한 형상’(forma)이라고 진술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단일성을 강조하고 있다.(STh I,76,1&3) 여기서 인간은 두 개의 실재로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나요, 영혼은 육체를 통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인간에게는 단 하나의 실체적 형상인 이성적 영혼이 있는데, 그것은 다만 이성 작용들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또한 생명을 유지하고 감각 기능을 수행하는 원리이기도 하다.(STh I,76,4) 성 토마스에 따르면, 만일 우리가 인간의 실체적 형상이 복수라고 가정하게 된다면 인간의 통일성은 훼손되고 말 것이다.
토마스에게는 영혼과 육체의 통일이란 부자연스러운 어떤 것일 수 없다. 영혼과 육체가 통일되어 있음은 영혼이 그 본성에 따라 활동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영혼은 사고력을 가지고 있으나 생득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감각 경험에 의해서 그 관념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육체가 필요하다.(STh I,84,6) 그는 영혼이 엄격하게 육체와 연관되어 있어서, 육체 없는 영혼이란 몸에서 떨어진 손과 같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 토마스에게서 육체는 영혼과 대조적으로, 즉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지 않다. 육체는 영혼의 현세에서 존재하기 위한 조건으로, 육체가 없다면 영혼은 도대체 존재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육체는 더 이상 영혼의 감옥(플라톤)이나 영혼이 전생에 지은 죄의 결과(오리게네스)가 아니라 선의 원천이며 영혼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 정신은 육체를 통하는 과정을 거쳐서 진리를 발견하고 선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영혼과 육체의 결합은 영혼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로운 것이다.
성 토마스의 통합적인 육체-영혼관은 가톨릭교회의 공적 교리로 인정받았다. 그 이후 교회는 인간을 물질적 육체와 정신적 영혼이라는 두 개의 구성 원리로 이루어진 합일체로서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통합적인 인간관이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으로 인정받았음에도 플라톤적 이원론은 서구의 문화적 유산에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인간을 육체와 영혼의 결합체로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인간 이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적인 육체-영혼관이 지닌 의미
일상적인 체험으로부터 우리는 육체와 영혼을 서로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를 정신적으로 넘어설 수 있고 육체를 마치 대상처럼 관찰할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의 육체가 병들고 노화될지라도, 그의 정신은 건강하고 젊을 수 있다. 여기서 인간 존재는 단 하나의 유일 원리로 소급시킬 수 없는 복합적 존재임이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두 요소를 하나로 환원하는 유물론자나 유심론자들의 일원론적 해결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을 세계와 관계하도록 해주는 육체와 그 육체의 제약성을 극복하도록 상승시켜주는 영혼은 긴밀한 상관관계 속에서 하나의 인간 존재를 구성하고 있다. ‘소우주’라고도 지칭되는 인간은 모든 영역 안에서 자신을 하나요, 동일한 인간으로 체험한다. 이러한 조화롭고 통합적인 인간관은 성경의 히브리적 사고에 잘 나타났으며, 성 토마스를 통해서 이론적인 체계를 이룰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불리는 인간이 서로 분리된 육체나 영혼이 아니라 단 하나의 통합된 인간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로 인간은 자신의 육체를 바탕으로 타인이나 자연 사물을 구체적으로 접촉하고 만남으로써 자신의 인간 존재를 현실화할 수 있고,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육체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이성적 영혼에 의해 통합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때, 참다운 인간 실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성 토마스는 인간의 내적, 개인적 영역뿐만 아니라 외적, 공적, 사회적 영역도 다루었다. 이렇게 그는 근대 데카르트 이후 널리 퍼져 있는 인간에 대한 이원론이 야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주요한 사고틀을 제공해 줬다. 더욱이 이러한 해결책은 르네상스와 근대를 넘어 서양 사상 안에서 명시화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성찰에 기초를 제공해 준 ‘인격’ 개념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다음 회에서는 ‘인격’ 개념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글 _ 박승찬 엘리야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