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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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 걸의 구례 정착기

[월간 꿈 CUM] 정지아의 구례 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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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반 이상을 서울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만 보면 물었다.

“고향이 어디예요?”

흥! 서울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거겠지. 서울 사람처럼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거겠지. 천만의 말씀! 나는 겉모습이 세련되지 않았어도, 촌년처럼 새까맣긴 해도, 누가 뭐래도 씨티 걸이다.

씨티 걸인 내가 고향에 돌아와(이것부터 어불성설인가? 하지만 뭐, 시골에서 태어나도 마음만은 씨티 걸일 수 있는 거다) 좌충우돌, 사건이 많았다.

사건 1. 씨티 걸인 나는 새벽에야 겨우 잠드는 씨티 걸의 속성을 버리지 못해 해가 중천에 뜬 아침 8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중이었다.

“아이.”

비몽사몽 간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우리 집에 온 것 같긴 한데 도무지 눈이 떠지질 않았다. 답이 없으면 가겠지, 서울에서처럼 별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청하려는 찰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나도 벌떡 일어났다.

“있냐?”

고향 마을에 사는 사촌 언니였다. 언니는 노크 따위는 하지도 않고 아이, 하며 문을 열고 성큼성큼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와 있냐, 하며 침실 문을 벌컥 열었다. 나는 연인도 아닌 사촌 언니에게 나의 민낯을 보이고야 말았다. 씨티 걸들은 알 것이다. 친구든 사촌이든 타인에게 민낯을 보인다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그날 이후 나는 대낮에도 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그러다 종내는 의심을 샀다.

“뭐 흔다고 대낮에 문을 걸어잠갔대? 누구 있냐?”

나의 친애하는 친척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집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혹 남자를 숨겨 두었나 싶은 모양이었다. 그 뒤로 문 잠그는 것도 포기했다.

사건 2. 구례에 내려온 초창기, 나는 서울 소재 대학의 계약직 교수로 일주일에 이틀 스무 시간 강의를 했다. 보통 화요일 새벽에 출발하면 목요일 새벽 두어 시에 돌아오는데 그날은 무슨 일이 있었던지 해가 떠 있는 낮시간에 도착했다. 늘 가는 하나로마트에 들러 세 걸음을 내디뎠는데, 순간, 마트에 있던 직원 포함, 모든 손님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결단코 선망의 눈빛은 아니었다. 그 눈빛을 언어로 옮기면 정확히 이러했다.

“쨔는 누구대? 우리 동네 것이 아닌디?”

당시의 나는 55 사이즈가 다소 헐렁한 수준의 몸매(지금은 66도 작다. 전 세계 할머니들의 손자 살찌우는 능력에 버금가는 구례의 능력 덕분이다)로, 9센티미터 힐에 보라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구례의 누구도 옷을 그따위로(지금 생각하니 그렇다는 말이다) 입지 않았다. 9센티미터 힐은 또각또각, 누구나의 귀에 꽂히는 소리를 냈고, 날선 시선에 놀란 나는 엉거주춤 뒷걸음질쳤다.

사건 3. 밤 열 시, 서울에서 강의를 끝내고 새벽 두 시경 집에 돌아왔다. 그때도 나는 9센티미터 힐을 신은 상태였다. 차 문을 열고 땅에 두 발을 딛는 순간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비가 왔는지 땅이 질어 힐이 쑤욱 박힌 것이었다.

이 두 번의 사건 이후로 나는 힐을 버렸다. 구례 사람들은 힐을 신지 않는다.
 


구례에서 멋 좀 부린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무원인데 그들은 3센티미터 구두를 즐겨 신는다. 그 구두는 하나로 마트에서도 또각또각,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의 시선을 끌 필요가 없다. 힐만 버린 게 아니다. 멋진 옷도 다 버렸다(아, 이건 자의만은 아니다. 서울 백화점에서 비싼 돈 주고 산 옷들은 죄 55 사이즈, 맞지 않아 입을 수가 없었다. 버려야만 했다).

대낮에도 걸어 잠갔던 문을 다시 열고, 힐을 버리고, 백화점 옷들을 버리면서 나는 서서히 구례 사람이 되어갔다. 요즘 나는 민낯이 편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서울서 놀러 온 친구들도 구례 사람들을 닮아간다.

서울 살 때 친구들과 나는 함께 자본 적이 없다. 저녁쯤 만나 늦어도 새벽 한두시면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서로의 흐트러진 모습을 볼 필요도, 기회도 없었다. 구례로 이사 온 뒤 친구들 모두 1박 2일로 방문한다. 처음 몇 번, 나는 친구들보다 먼저 일어나 엊저녁의 술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를 했다. 아무리 절친이라지만 세수나 양치도 하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은 없으니까. 늦게 일어난 친구들은 고개를 외로 꼰 채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하지만 나는 곁눈질로 보았다. 친구들의 눈곱 끼거나 침 자국 선명한 꾀죄죄한 얼굴을! 그런데 뭐?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세수 안 하고 이 안 닦아도 애정전선 이상 무(無)임을 확인한 뒤로 나도 세수를 거르기 시작했다. 세면대가 없어 세수가 불편하다는 둥, 수압이 약해 샤워가 힘들다는 둥, 친구들도 갖가지 핑계를 대며 씻기를 거부하고 본연의 모습을 보여갔다. 물도 아끼고 좋기만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민낯을 보이는 것, 그래도 서로를 얕잡아보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 이것이 구례 인간관계의 기본원칙이다. 씨티 걸인 나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원칙이었으나 따르고 보니 이토록 편할 수가 없다.

씨티 걸로 살던 시절, 나는 사람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 백화점에서 옷을 사고(물론 중저가, 대개는 매대의 할인상품이었지만), 꽤 좋은 화장품을 쓰고, 외출할 때면 이옷 저옷 입어보느라 귀한 시간을 낭비했다. 그래도 명품을 든 친구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기가 죽었다. 후진 동네, 작은 평수의 낡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도 어쩐지 부끄러웠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구례서는 샤넬이나 에르메스 가방을 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할매들 누구도 그 가방이 자신들의 집보다 비싸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굳이 가격을 들먹이면 할매들은 십중팔구 감탄은커녕 이렇게 외칠 것이다.

“아이고, 썩어빠지겄다! 먼 지랄헌다고 집 한 채를 지고 댕긴대? 돈 지랄헐라먼 쩌그 밥도 못 묵는 꺼먼 애들 밥이나 사주제!”

통쾌하지 아니한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구례 장에서 5천 원에 산 몸빼바지를 입고 겨우 이만 닦은 채 구례 마트를 활보한다. 머리에 까치집을 짓게 생겼어도 여기 사람들은 문제 삼지 않는다. 그저 스윽 보고 지나친다.

“쨔는 우리 동네 애기그마.”

라고, 마음으로 동지의식을 느끼면서.


글 _ 정지아 (소설가)
소설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이 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삽화 _ 김 사무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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