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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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성당 순례] 용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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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로 421. 언덕 위로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 있는 한 쌍의 노란 돔이 보인다. 이 2개의 돔과 그 사이의 지붕, 그 위로 세워진 3개의 십자가, 지붕 아래 벽감의 성모상, 세로로 길게 난 스테인드글라스들, 그리고 이들을 굳건하게 지지하는 벽돌조 외벽이 고풍스러운 건물 전면, 파사드를 이룬다. 제2대리구 용문성당이다.





한국교회 시작 당시 존재했던
양근 신자 고을 역사 이어진 곳
교구 순례사적지이자 희년 순례지


역사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
옹기가마처럼 생긴 기도방과
숲 둘러싸인 십자가의 길 눈길



■ 신앙선조의 이야기를 품은 성당


용문성당 정문에 다가가자 출입문 좌우로 유리창마다 우리나라 신앙선조를 그린 성화들이 보였다. 주로 한국교회 초기에 활동했던 신앙선조들의 초상과 그 일화를 담은 성화들이다.


신앙선조에 관해 찾아본 이들이라면 한번쯤 봤을 법한 그림들. 이 그림들은 순교자들의 피로 신앙공동체를 꽃 피운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용문본당 공동체의 역사를 기억하게 해주는 그림들이기도 하다. 용문본당이 한국교회의 요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양근의 신자 공동체에서 이어오는 본당이기 때문이다.


양근은 하느님의 종 권철신(암브로시오)가 살던 마을이다. 일찍부터 이름 있는 학자였던 권철신의 문하에는 여러 젊은 학자들이 모여 들었다.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이승훈(베드로)·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비롯해 복자 홍낙민(루카)·윤유일(바오로) 등 초기 한국교회를 세우고 순교로 신앙을 증거한 여러 신앙선조들이 그 문하생들이다. 권철신의 문하생들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앙을 전파한 주역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종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권철신의 동생이고, 복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는 그의 조카이자 양자였다. 양근은 ‘교우촌’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전, 한국교회 설립 당시부터 신자들의 고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양근의 신자들은 용문의 산촌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용문산 깊은 산중으로 피신해 교우촌을 이뤄 살았다. 이 교우촌이 이어온 공동체가 1908년 교구의 5번째 본당인 용문본당으로 이어진 것이다.



성당 1층에는 ‘수원교구 순례사적지 용문성당 역사전시관’이 조성돼있었다. 서학 연구가 신앙으로 이어진 천진암 강학에서부터, 양근 지역 신앙의 역사, 박해와 오늘날의 용문 공동체에 이르는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또 신앙선조들이 사용하던 신심서적들, 미사에 사용한 제구들도 함께 살필 수 있어 신앙선조들의 역사와 신앙생활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교구는 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역사를 품고 있는 용문성당을 2020년 11월 ‘수원교구 순례사적지’로 선포해 많은 신자들이 순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2025년 희년 순례지로도 지정돼 희년 전대사도 수여받을 수 있다.


■ 피정에 머무는 곳


성당 외부에도 신앙선조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성모동산 옆에 자리한 기도방이다. 본당의 주보성인인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이 기도방은 무엇보다 모습이 독특하다. 옹기나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살던 터전을, 생업을 모두 버리고 산속으로 떠난 신앙선조들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선택한 활동은 옹기를 구워 파는 일이었다. 용문성당 인근에도 요곡(窯谷, 요골) 마을이 있어 1985년까지 옹기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성당에는 이런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성당 울타리를 항아리를 활용해 조성하기도 했다.




옹기가마 모형의 기도방에 들어가니 작은 창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자연채광으로 아늑한 느낌이 드는 둥근 형태의 방이 나타났다. 세속을 떠나 사막이나 산속 동굴에서 기도하던 옛 수도자들처럼 고요하게 하느님 안에 머물기 좋은 공간이었다.


기도방만이 아니다. 성당 뒤편 동산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은 숲으로 둘러싸여 자연 속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성당과 기도방, 숲속 십자가의 길 등은 순례자들이 짧게나마, 세속을 피해(避世) 조용한 곳에 머물며 기도할(靜念) 수 있도록, 피세정념, 즉 피정에 이를 수 있도록 초대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 용문이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피정이 이뤄진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용문성당에서의 순례 중 피정을 기억하는 것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1785년 명례방에서 열린 신자들의 모임이 발각된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하느님의 종 김범우(토마스)가 유배를 가고, 이벽, 이승훈 등도 문중의 박해를 받으면서 당시 교회는 구심점을 잃고 말았다. 이때 권일신은 조동섬(유스티노)과 용문산에 올라 8일 동안 침묵 피정을 하고 다시 교회 재건에 힘썼다.


샤를르 달레 신부는 「한국천주교회사」를 통해 “그(권일신)는 규칙적인 피정을 할 결심을 하고, 용문산에 있는 어떤 적막한 절로 들어가 피정 동안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기로 했다”며 “그들은 주님과 성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바람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신심 수업, 즉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면서 8일을 지냈다”고 권일신의 피정을 묘사하고 있다.


달레 신부는 “이런 실천은 그들 자신과 그들이 피정 후에 가르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얻게 한 것이 확실하다”고 밝힌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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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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