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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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는 날

[월간 꿈 CUM] 정지아의 구례 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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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랜만에 엄마 얼굴이 밝다.


“아이, 그 사램들 오늘 온다냐? 멫 시에 온다냐?”
 
여차하면 콧노래라도 부를 기세다. 이럴 걸 울고불고 그 난리를 쳤단 말이지! 처음 목욕차온 날을 생각하니 다시 울화가 치민다. 아흔일곱, 엄마는 백 살이 코앞이고, 나는 환갑이 코앞이다. 엄마 사는 집에는 온수가 안 나온다. 시골집이 다 그렇다. 우리 마을은 총 다섯 가구. 집주인이 한 사람이다. 주인아저씨는 트럭도 몰고 버스도 몰고 농사도 짓고, 평생 손톱 밑에 그러모은 돈으로 고향 땅을 사들였다. 그러고는 집을 다섯 채나 지었다. 이 산골 마을에 펜션용으로. 말은 펜션인데 지붕이 있으니 집인 줄 알지 한데나 다름없다. 당연히 손님은 들지 않았고 내가 오기 전까지 집들은 비바람을 맞으며 비어 있었다. 아래윗집을 얻어 윗집에는 내가 살고 아랫집에는 엄마가 산다.

내가 사는 집은 흙벽인데 아침에 일어나면 벽 모퉁이마다 흙이 수북했다. 바닥공사는 얼마나 대충했는지 여기저기 푹푹 꺼져 난방 코일이 툭툭 불거질 정도였다. 술 마시다 하필 코일을 깔고 앉은 손님 하나는 엉덩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참다못해 주인아저씨와 내가 반씩 비용을 부담해 올여름 내가 사는 집을 수리했다. 일하는 인부들 옆에서 아저씨는 자꾸만 대충 하라고 다그쳤다(대충 하라는 주인을 나는 머리털 나고 첨 봤다). 돈 들이는 게 아까워서다. 뭐라 항의할 수도 없다. 나한테만 야박해서 그런 게 아닌 줄 알기 때문이다. 내 집은 온수라도 나오지 주인집과 엄마 집은 온수도 나오지 않는다. 논도 있고 밭도 있고 산도 있고 과수원도 있고 집도 다섯 채나 있는 주인아줌마가 21세기에 한겨울에도 찬물로 설거지를 한다. 최선을 다해 산 20세기형 인간 중에 이런 인간들이 제법 많다.

주인아저씨 말 듣고 정말 대충 할까 봐 나도 틈만 나면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 어느 날은 참다 참다 아저씨에게 말했다.

“우리 아저씨는 비만 가리면 집이지?”

십이 년째 살가운 이웃으로 살아온 터라 언젠가부터 스리슬쩍 아저씨에게 말을 놓기도 한다.

“아이가. 비만 가레가꼬 쓰가니? 바람도 막아야제.”

인부들까지 다 같이 웃고 말았다.

그래도 내 집은 돈 들인 보람이 있어 이제 그럭저럭 사람 사는 집 같기는 하다. 문제는 엄마 집이다. 밥이야 내가 해서 나르니 상관없는데 목욕이 문제다. 주인아저씨가 어디서 전기 온수통을 주워다 놔서 온수를 쓸 수는 있다. 그래도 난로로 난방을 해봤자 한데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몇 해 전까지는 엄마가 바깥 걸음을 했다. 읍내 미장원에도 가고 목욕탕에도 다녔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문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 걸음을 못 걸어서가 아니다. 죽을 때 지난 사람이 얼굴 빳빳이 들고 나다니는 게 부끄럽단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럼 빳빳이 들지 말고 푹 숙이고 다녀!”

농담이었는데 엄마는 정색을 하고 받았다.

“늙도 안 헌 니가 내 속을 워찌 알겄냐.”

엄마 나이 아흔일곱, 그 속을 환갑도 안 지난 내가 어찌 알까. 아직 젊은 나는, 장수 유전자를 두루두루 타고난 나는, 그 나이까지 살까, 그게 두렵다.

이렇게 꼬셔보고 저렇게 꼬셔봐도 전직 빨치산 엄마의 고집은 쇠심줄보다 질겼다. 결국 지난 몇 년간 엄마는 추위에 벌벌 떨며 때도 못 밀고 물이나 끼얹는 정도로만 지냈다. 어느 날, 목욕차라는 것이 내 차 옆을 스쳐갔다. 목욕차라니? 당장 구례 사정에 밝은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이. 잘 생각혔네. 목욕차 부르먼 쓰겄네. 나도 자네헌티 그 말 해줄라 했는디 워치케 알았대?”

언니는 자분자분 목욕차 부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먼저 건강보험공단에 요양보호 등급 신청을 했다. 병원에 가서 등급을 받아오라기에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우리 엄마, 한 군데도 아픈 데가 없단다. 몇 번을 말해도 요지부동, 결국 엄마의 약한 고리를 찔렀다. “내가 엄마 모시느라 돈을 얼마나 쓰는지 알아? 병원 가서 등급만 받으면 국가에서 돈을 왕창 준다네. 나 돈 좀 버세.”
 


그 말에 엄마는 삼 년만의 읍내 나들이를 허락했다. 의사는 주어진 검진표에 따라 검사를 하고 어디가 아프냐, 움직일 수는 있냐, 온갖 질문을 했다. 모든 질문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한나도 안 아프요. 내 펭상 요로크롬 안 아픈 적이 읎어라.”

“할머니! 이러시면 안 돼요! 아프시다고 해야 돼요! 그래야 등급이 나오지!”

맘 좋은 의사가 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건만 엄마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는 말만 계속했다. 일어나는 데 몇 분이나 걸리고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걷는 주제에. 일분 전에 들은 말을 또 물어보는 주제에. 그래도 의사가 마음을 써줘 매일 세 시간 반씩 보호사가 올 정도의 등급을 받았다. 첫날부터 엄마는, “아이고, 미안해서 워째야쓰까이. 나 멀쩡헝게 낼부텀 오지 마씨요. 죽을 때 지낸 사램이 젊은 양반헌티 신세를 지면 쓰가니.”라며, 보호사가 걸레를 잡으면 걸레를 빼앗고, 빗자루를 잡으면 빗자루를 빼앗았다. 그날 보호사는 하릴없이 엄마 옆에 앉아서 수다만 떨다 갔다. 모르는 사람과 수다 떠는 게 일하는 것보다 더 고역이라는 것을 늙은 엄마는 모르는 거겠지. 엄마도 고역이긴 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드러누울 수도 없고 세 시간 반이나 꼼짝없이 앉아있었던 엄마는 그날 밤, 허리가 아프다며 끙끙 앓았다.
 


나는 아득해졌다. 목욕은 난이도가 더 높은데 어쩌나…. 드디어 첫 목욕을 하는 날이 되었다. 목욕차가 당도했다. 서글서글 인상 좋은 아줌마가 수건 두 장과 속옷,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엄마 모시고 나오란다. 따뜻한 데서 욕조에 몸 담그고 때 밀자, 몇 번이나 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얼굴이 굳었다. 목욕 시간은 정해져 있고 마음 급한 내가 완력으로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엄마는 있는 힘껏 몸을 뒤로 당기고는 급기야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울었다. 섧게도 울었다.

“나가 늙었다고 사램도 아닌 중 아냐!”

젊은 사람도 목욕 가서 남에게 때를 미는데 대체 무엇이 모욕으로 느껴진 것인지 나는 가늠도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때를 밀 테니 대신 따뜻한 차 안으로 가기만 하자고 엄마를 달랬다. 그제야 엄마가 몸을 일으켰다. 한 시간 반만이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라 자동리프트를 타고 차 안에 당도했다. 내가 목욕시킬 요량으로 슥 둘러보았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물을 받고 온수를 틀고, 모든 게 기계장치였다. 속으로 난감해하는 찰나, 아줌마가 눈을 찡긋거렸다.

“그냥 가씨요.” “예?” “나가 할랑게 따님은 가씨요.”

내가 망설이자 아줌마가 다시 눈을 찡긋거렸다.

“여개 들어온 이상 끝나부렀소! 벗어부렀는디 워쩔 수나 있간디?”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말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를 등지고 나왔다. 엄마는 옷을 벗느라 내가 나가는 줄도 몰랐다. 그래도 신경이 쓰여 창문으로 계속 목욕차를 지켜보았다. 한참 만에 엄마가 나왔다.

간단하게 먹을 걸 챙겨 엄마 집으로 갔다. 아줌마가 엄마 옆에 딱 붙어 손톱을 깎아주고 있었다. 목욕하느라 보청기를 빼서 엄마는 내가 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우리 딸도 손톱은 안 깎아주는디…. 참말로 고맙소이. 이 은혜를 워치케 갚아야쓰까라?”

엄마가 내 흉보는 말을 나는 평생 처음 들었다. 혼자 손톱 깎기가 그만큼 고되었으리라. 아직 젊은 나는 그것도 몰랐다. 손톱을 다 깎은 아줌마가 엄마 옆에 딱 붙어 물었다. “엄마. 환갑은 지났제이?”

그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들은 엄마가 손사래를 치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낼모레 백 살인디 먼 소리대? 누가 들을까 무섭소.”

“워매! 백 살? 나가 환갑인디 멫 살 더 묵은 언닌 중 알았드만. 엄마는 워찌 이리 곱다요?”

뻔한 거짓말인 줄 알면서 엄마는 좋아 어쩔 줄 몰랐고, 아줌마는 엄마의 볼을 자식인 양 어루만졌다. 왠지 핑 눈물이 돌았다. 저렇게 살가운 딸이면 얼마나 좋으랴. 손도 한 번 안 잡아주는 쌀쌀맞은 딸을 옆에 두고 엄마는 얼마나 외로울까.

엄마는 그날 이후 월요일을 기다리며 산다. 요일도 잊고 날짜도 잊었던 엄마에게 목욕 아줌마 오는 월요일이라는 기준이 생긴 것이다. 귀찮아 보청기도 빼고 티비를 보던 엄마가 월요일에는 일어나자마자 보청기를 끼고 바깥에 귀를 기울인다. 목욕차 오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 얼굴에 생기가 돈다. 쌀쌀맞은 내가 살가워지기는 진작에 텄고, 딸보다 살가운 목욕 아줌마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 할까, 요즘 고민이 깊다.
 


글 _ 정지아 (소설가)
소설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이 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삽화 _ 김 사무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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