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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장 근본적인 영적 에너지인 ‘사랑’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10. 치유의 근본 원리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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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의 기본 요소를 노동(labor)·작업(work)·행위(action)의 세 가지로 규정한다. 노동은 생명의 조건에 부합하는 육체적·생물학적인 기초활동이며, 작업은 연속성을 지닌 도구적 인공 세계를 창조하는 인간의 고유한 활동이다. 행위는 다원성과 탄생성에 기반해 복수의 인간이 함께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로서의 정치적 활동을 의미한다.

활동적 삶에 대응하는 말로는 ‘정신적 삶’ 혹은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이 있다. 이는 인간이 육체적 조건 속에서만 살아가지 않고 정신적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런데 활동적 삶이든 정신적 삶이든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생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요구된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신체적·생물학적 활동을 통해 이런 생명 에너지를 외부에서 얻는다. 영양 섭취가 이런 활동에 속한다.

그러나 인간은 신체적·생물학적 활동의 에너지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에너지는 신체적 에너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체적 에너지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이 건강한 음식이라면, 정신적 에너지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일용할 영적 양식이다. 오로지 영적 양식만이 진정으로 정신적 삶에 활력을 주는 만큼, 이것이 결핍될 때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적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영적 에너지는 무엇일까? 기쁨·위로·평화 등이 그러한 것이겠지만 삶의 가장 근본적인 영적 에너지는 ‘사랑’이다. 「신약 성경」의 「요한의 첫째 서간」은 하느님은 사랑이며, 하느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근원적 힘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며,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요한의 첫째 서간의 신앙 고백은 심오한 철학적·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즉 우리가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또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바로 하느님의 초월적 사랑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상처를 주고받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절대적이며 초월적인 사랑에 근거해 용서받고 치유를 받는다.

사랑은 우리를 존재의 긍정과 충만으로 초대하는 삶의 긍정적 에너지이다. 이 영적 에너지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수고하여 얻는 것으로, 즉 초월적 사랑을 향해 부단히 자기를 개방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만약 이런 영적 에너지를 그때그때 얻지 못할 경우 무와 허무, 부정과 거부, 절망과 실의에 쉽게 빠지게 된다. 상처 입은 자신을 치유할 수도 없게 된다.

영혼의 상처는 흔적 없이 아물기보다 고통의 흔적으로 영원히 남기에 이를 보듬는 사랑의 긍정 에너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의 결핍으로 내적 충만함을 느끼지 못할 때 영혼의 상처는 언제든 다시 나타나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우리는 평소 사랑을 얻고자 노력하기보다는 자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곤 한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 사랑의 본질이 ‘주는 사랑’이 아닌 ‘오는 사랑’에 있음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사랑받지 않은 자는 결코 사랑할 수 없으며, 치유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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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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