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요당리(蓼塘里)는 조선 후기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마을로 여뀌(蓼)가 많은 연못(塘)이 곳곳에 있었다고 해 생긴 자연 지명이다. 성인·복자의 순교 터는 아니지만 신유박해(1801)를 기점으로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성 장주기(요셉·1803~1866)와 성 민극가(스테파노·1787~1840), 성 범 라우렌시오 주교(앵베르·1796~1839) 등 신앙 선조들의 혼이 서려 있는 곳이 있다. 경기 화성시 요당길 155에 위치한 요당리성지 성당(전담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을 찾았다.
따뜻한 분위기의 대성당
요당리성지에 들어와 빨간색 벽돌로 지은 대성당 앞으로 가면 맨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성당 봉헌 기념으로 세운 손 모양 조각상이다. 성당 건립에 후원을 해준 이들을 기념하며 만든 조각상은 하늘을 향해 손으로 성당을 봉헌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성당 입구 오른쪽에는 성 장주기의 흉상이 순례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서 있다. 성인이 당시 자신의 집을 신학교 학생들의 공부 공간으로 내어준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문 앞에 서면 독특한 문양이 보인다. 바로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이름의 자음과 모음으로 만들어진 철물 장식이다. 나무 타일이 짜인 배경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문을 열고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색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순례자를 반긴다. 이곳이 초기 교회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운영되던 곳이었기 때문일까? 스테인드글라스의 문양은 곡식들이 자라나는 형상으로 보인다. 또한 정열의 붉은색에서 강렬한 푸른빛으로 차츰 변화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상에서 곡식이 자라기 위한 물과 햇볕, 또 이를 길러낸 순교자들의 선혈까지도 엿볼 수 있다.
제단 쪽에는 한 장 한 장 구워낸 주홍빛의 벽돌 위로 십자가, 그리고 한국 103위 순교성인이 새겨진 감실이 모셔져 있다. 십자가에 가로대가 없는 이유는 그것을 순례자의 몫으로 두어, 예수님과 십자가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가길 바라는 뜻이 담겼다.
성당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의 길은 이숙자 수녀(체칠리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의 작품으로 손이나 발 등 부분에만 집중한 조각을 통해 핵심을 짚어내어 묵상하도록 유도한다. 성지 성당으로는 흔치 않게 성당 뒤쪽에는 유아실이 자리해 있어 아이와 부모의 방문을 반긴다. 또한 중앙 통로 뒤 햇빛이 들어오는 길목에 푸른 장미 모양의 둥근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치해 성령의 빛을 형상화했다.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소성당
성당 오른쪽 건물 2층에 있는 소성당은 정답고 포근한 느낌이다. 십자가와 제대 뒤 벽돌이 대성당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소성당 십자가의 길은 조각가 이효주(아나스타시아) 씨가 1998년 화재를 입은 서울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의 불에 탄 목재로 만들었다. 그때까지 약 100년간 기도의 공간이었던 중림동약현성당의 얼이 서려 있어 묵상을 돕는다. 오랜 시간을 버텨온, 그래서 항상 그 자리에 영원할 것 같았던 거룩한 공간도 한 순간에 스러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고 성찰하게 만든다. 특히 사순이 시작된 지금, 폐기물이 돼버린 목재가 십자가의 길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날을 기다리게 만든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대성당과 빛이 쏟아지는 모습이 강조돼 있다. 곡식을 잘 자라게 해주는 태양 빛이자 우리의 신앙을 길러주는 성령의 빛으로 해석된다. 제대 위에는 한 초 조각가가 기도하는 손과 못을 직접 새겨 봉헌한 사순 시기 보라색 초가 놓여 있다. 천장은 대성당처럼 나무로 마감돼 따스한 기운을 더했다.
섬세하게 정돈된 야외 성지
요당리성지에서 유명한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길은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기도의 광장을 디귿 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폭이 2~3m 되는 두 길은 양옆에 단풍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고 그늘을 선사해 순례자가 쾌적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십자가의 길은 성지 성당과 같은 양식이다. 묵주기도 길에 세워진 항아리 모양의 5단 묵주 알들은 이곳이 교우들의 생활터였음을 상징한다.
기도의 광장 가운데 계단에는 성모자상이 위치한다. 4월 말에서 5월 초가 되면 성모상 주변에 가득 피는 붉은 영산홍이 선조들의 숭고한 뜻을 받든다. 성모상 저 너머로 대형 십자가와 성인·복자·하느님의 종 일곱 분의 가묘가 있어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고 묵상할 수 있게 했다. 가묘 뒤와 성지 곳곳에 조성된 소나무는 순교자들의 절개를 보여준다. 게다가 성지 전체를 향나무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어 오붓한 정취를 자아낸다.
성 장주기와 복자 장 토마스(1815~1866)의 출생지이자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1819~1869) 등 증거자들의 터전이었던 요당리성지. 부활을 향해 열정을 불태웠던 그들의 피와 땀이 희년에 맞는 사순 시기에 더욱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