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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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로 복음 증거하고 선교한 사도 시대 그리스도인

[저는 믿나이다] (20) 사도 시대 황제들의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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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순교’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하게 결합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라는 주님 사명에 따라 땅끝에 이르기까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사도 1,18 참조)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주신 이 사명은 처음부터 반대자와 박해자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함을 뜻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애초부터 신앙을 위해 순교를 각오했고, 또 복음을 증거하다 기꺼이 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이처럼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선교 열정을 고취시켰고, 신앙심을 북돋웠습니다. 이에 사도 시대 때부터 교회는 순교를 신앙의 진리에 대한 최상의 증거로 여겼습니다. “순교란 죽음에까지 이르는 증거를 가리킨다. 순교자는 자신과 사랑으로 결합된 그리스도,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순교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와 그리스도교 교리의 진리를 증언한다. 순교자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죽음을 참아 받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73)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도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의연한 순교 장면이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교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순교 자체가 선교가 된 것이죠. 모든 선교사가 순교자가 될 순 없지만, 모든 순교자는 복음을 증거한 선교사입니다.

이번 호에는 초대 교회 시기 로마 황제들의 그리스도교 박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네로 황제(54~68년)입니다. 64년 7월 18일 밤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9일간 로마를 삼킨 이 화재로 2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화재 첫날부터 “네로가 자신의 도시를 짓기 위해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황제의 궁이 있던 팔라티노 언덕과 첼리오 언덕 사이 대전차경기장에서 발화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네로가 불타는 도시를 보며 트로이 멸망을 노래했다”는 말이 로마인들 입에 오르내렸죠.

네로는 자신을 향해오는 군중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방화범”이라고 내몰았습니다. 그리고 방화에 대한 합당한 죄를 묻는다며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 동물 가죽으로 덮어씌우고 개나 야수들로 하여금 물어뜯게 하거나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밤에는 화형에 처해 거리를 밝혔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도 이때 순교했습니다.

네로 황제가 어떻게 그리 쉽게 그리스도인들을 대화재 책임의 희생 제물로 몰아갈 수 있었을까요? 지난 호에 설명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았고, 로마인들의 가정에서 성행하던 갖가지 미신과 우상 숭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지 않기 위해 로마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멀리하고, 자신들만의 신앙 공동체 안에서 따로 생활하였지요. 사람들 눈을 피해 기도 모임을 갖고 성찬례를 하는 것을 오해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근친상간하고, 살인 의식을 행해 인육을 먹는다는 나쁜 소문이 로마 사회에 퍼졌습니다. 이러한 소문으로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혐오했고, 네로는 로마 대화재의 주범인 국가의 적으로 손쉽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네로의 박해는 그가 죽은 후 곧바로 그쳤습니다. 다른 도시나 지방으로 박해가 번지지 않았고, 도미티아누스(81~96년)가 황제가 되기 전까지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없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요한 묵시록에 묘사될 만큼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적’으로 여겨진 인물입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모든 이에게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에우세비우스는 「교회사」에서 도미티아누스가 메시아의 출현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의심 많은 황제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예수님의 친척인 두 명을 법정에 소환했다. 도미티아누스는 예전 헤로데 왕처럼 메시아의 출현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도미티아누스는 두 사람을 심문했다. 그러나 그들이 손에 못이 박힐 정도로 심한 노동을 했고,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자 그는 그들을 조롱하며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3,20,1-6)

그가 메시아의 출현을 두려워한 것은 그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형 티투스 황제가 제1차 유다-로마 전쟁 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파괴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유다인의 사정을 잘 알았죠. 그래서 유다인에 대한 세금도 과징했습니다.

그는 15년 재임 동안 요한 사도를 파트모스 섬에, 프라비아 도미틸라를 폰티아 섬에 유배시켰을 뿐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을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특히 그는 생식기를 태우고, 손을 자르는 잔혹한 고문을 그리스도인에게 했습니다. 그는 신분과 나이를 구분하지 않은 잔인한 박해로 로마인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사후 ‘기록말살형’을 받았습니다. 그가 생전에 선포한 모든 칙령이 폐기됐고, 그의 이름은 모든 공식 문서와 비문에서 삭제됐습니다.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황제가 될 권리를 박탈당했습니다.

“나를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놔두십시오. 나는 짐승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이르게 될 것입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리길재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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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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