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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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와 베드로

[월간 꿈 CUM] 복음의 길 _ 제주 이시돌 피정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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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 이시돌 ‘은총의 동산’ 십자가의 길 제1처 ‘유다’

 


제주 ‘은총의 동산 십자가의 길’ 들머리에는 다른 십자가의 길 1처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두 사람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형상들은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실 무렵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통 저는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저들이 누구일까 묻곤 합니다. 그들은 유다 이스카리옷과 시몬 베드로입니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으며 예수님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둘 다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모두 남자이며, 둘 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기꺼이 이 부름을 받아들였고 예수님의 생애 동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둘 다 최후의 만찬을 함께했으며, 예수님께서 두 사람 모두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방식은 달랐지만 둘 다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유다가 관리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어 끝내 예수님은 체포되기에 이릅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던 베드로는 한 하녀의 물음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는 또한 도움이 필요할 때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동상의 모습에서 유다는 매우 차분해 보이지만 베드로는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태오복음에는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이 둘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으로 어느 사람이 자살할지 추측한다면 우리는 더 괴로워 보이는 베드로가 그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할 가능성 높습니다. 그런데 모두 아는 것처럼 실제로 자살했던 사람은 유다입니다. 우리는 유다가 자신의 목에 밧줄을 감고 그 끝을 손에 잡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지만 자신의 배신을 감당하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요한복음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동기가 돈이었다고 암시합니다. 돈이 동기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유다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을 때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돈을 돌려주려고 했습니다.(마태 27,3-5)
 

 

베드로

 


자신이 한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실체를 직시해야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 받아들이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끝내는 것이 더 쉬워 보였습니다. 그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고 믿으며 애써 차분해 보이기도 합니다. 실상 그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반면에 베드로에게는 평온한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가져온 현실 앞에서 그는 매우 괴로워 보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강인하고 용감하며 무엇보다 믿음이 충만한 이로 여겼습니다. 이제 그는 약하고 겁쟁이에다 믿음이라곤 없는 자신의 다른 실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실망스럽고 괴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와중에도 베드로는 자신 스스로에게서 도망치거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성전에 기도하러 가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생각나게 합니다.(루카 18,9-14) 죄인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이고 인정했으며, 다른 사람인 척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고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3-14)

베드로처럼 우리가 특별히 스스로의 불편하거나 부끄러운 면을 잘 살피고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삶(생명)을 선택하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인정받고 나아가 사랑받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소비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은 부정하려고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친밀하게 아시고 우리의 결점과 실패를 아시지만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고 베드로처럼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을 계속할 수 있는 은총을 얻을 겁니다.

베드로는 결코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모범이 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새기면 우리가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들을 살펴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 _ 이어돈 신부 (Michael Riordan,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제주교구 금악본당 주임,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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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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