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29)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요나 4,4)
어느 성당에 특강을 갔다가 화장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 주세요. 변기가 막힙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이 글을 이렇게 읽어 보았습니다.
“변기가 막힙니다”를 “변 기가 막힙니다.”
‘기가 막히다.’
왜, 기가 막힙니까? 오물이 내려가는 파이프 관이 가늘고 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황당한 일을 당하면 자주 ‘기가 막히다’라는 표현을 쓰며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우리 몸이 기가 막히는 근본 원인은 마음을 넓게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씀씀이가 작아 기가 흐르는 관이 좁아져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개구리는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장자」에 나오는 격언입니다. 좁은 우물에 갇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딱한 처지는 개구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에서 계속 반복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런 예화를 강론에 인용하셨습니다.
“산을 오르던 청년이 절벽 위에서 독수리 둥지를 발견하고 알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독수리 알을 칠면조 알을 품고 있는 칠면조 둥지에 넣어두었습니다. 얼마 후 칠면조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와 독수리 새끼와 함께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 새끼는 다른 칠면조 새끼들과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칠면조 새끼들이 땅만 바라보며 자라는 반면, 독수리 새끼는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은 분명 칠면조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창공을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본성을 지녔음에도 아무도 독수리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그는 칠면조 사이에서 칠면조의 삶을 살았습니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창공을 훨훨 날아 비상할 수 있는 자유를 지녔음에도 땅에 매여 땅만 바라보며 날지 못하는 슬픈 짐승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1–2)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모두에게 진실히 묻습니다.
“나는 칠면조로 살 것인가? 아니면 높이 날고자 열망하겠는가? 혹여 나는 자신의 만족만 추구하며 내 것에만 관심을 가진 채, 세상이 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앞 못 보는 양 떼처럼 매여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높이 날기 위해 창공을 바라보고 있는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더욱더 기도에 전념하고 높은 곳을 바라보십시오.”(프란치스코 교황, 「한 사목자의 성찰-프란치스코 자비」, 생활성서, 127~128쪽)
요나의 문제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구원은 자기 민족에게만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독단적인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독단적 이기주의에 사랑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요나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기에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입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여 버립니다. 분노가 치밀어 친동생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요나에게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4,4) 하고 물으셨던 것처럼 카인에게도 똑같이 묻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창세 4,6–7)
이는 우리에게도 화를 내지 말고 관대한 포용의 마음으로 살라고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화가 잔뜩 났던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늘 제 속이 좁고 좁아 믿음마저 편견과 편협으로 치우쳤던 이기적인 삶을 뉘우칩니다. 좁은 삶은 저를 힘들게 하였고 남도 힘들게 하였습니다. 다시금 깊이 뉘우치며 넓은 신앙과 구원, 넓은 마음, 포용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