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수난기에 등장하는
제각각 다른 모습의 사람들 중
나는 누구 모습인지 묵상하며
의미있는 성주간 보내야
각자의 머리에 재를 얹으며 시작한 사순 시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오늘, 성주간의 첫째 날에 우리는 성지(聖枝) 축복과 행렬을 거행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합니다. 또한 ‘주님의 수난기’를 들으며 성금요일에 이루어질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묵상하며 준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수난과 죽음의 십자가의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최후 만찬 때에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를 두고 말다툼을 벌이고, 잠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채 예수님 홀로 수난의 길을 걷게 한 ‘제자들’과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도 갈 수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고 외쳤지만,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한 ‘베드로’를 떠올리게 됩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성전 경비대장들’, 제자의 칼에 잘린 오른쪽 귀를 치유 받은 ‘대사제의 종’,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추궁하는 ‘대사제의 하녀’도 떠오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지 못하고, 자신들의 종교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급급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최고 의회 의원들’과 예루살렘 입성 때 환호했던 사실을 잊어 버리고 바라빠를 풀어달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루카 23,21)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백성들’을 바라봅니다.
또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들려오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고, 군중의 폭동과 지위 상실에 대한 위협에 굴복하여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리고 바라빠를 풀어 주는 ‘빌라도’와 예수님을 하나의 조롱거리 장난감 정도로만 여기는 ‘헤로데’를 봅니다. 예수님을 대신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해골 언덕으로 오르는 키레네 사람 ‘시몬’과 십자가의 길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을 만납니다. 그저 죽음의 시간만을 기다리다가 이유도 모른 채 석방된 ‘바라빠’,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 그리고 자신이나 구원해 보라며 빈정거리고 조롱한 ‘지도자들과 군사들’도 만납니다.
당신은 메시아시니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수 한 사람’과 예수님은 무죄임을 고백하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실 때 기억해 주십사고 청하는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다른 죄수 한 사람’의 모습도 봅니다. 예수님께서 의로운 분이요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아보는 ‘백인대장’, 멀찍이 서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 모심을 지켜보고 향료와 향유를 준비하는 ‘갈릴래아에서부터 함께 온 여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무덤에 모시는 아리마태아 출신 최고 의회 의원 ‘요셉’의 믿음을 봅니다.
이 모든 사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의 길에 자리한 이 사람들은 자신과 자기 이익을 기준으로 각자 저울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난과 죽음의 십자가의 길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몸과 새 계약의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시며 기억하고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루카 22,17-20 참조) 서로 섬기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루카 22,26-40 참조)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기를 청하십니다.(루카 23,34 참조) 회개하는 이들에게 낙원을 약속하십니다.(루카 23,43 참조) 오후 세 시에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죽음을 맞이하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이 가르치고 보여주신 그 한없는 사랑을 이제 스스로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써 완성하고 계십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필리 2,6-9 참조)라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바칠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마음을 새기려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는 누구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지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길에서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이제 한 주간 앞으로 다가온 부활을 준비하며,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 주간을 좀 더 의미 있게 가꾸어야겠습니다. 영원한 삶을 믿고 희망하는 부활 대축일에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필리 2,11)이시라고 기쁘게 고백합시다!
글 _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