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우연적이고 변화 가능한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외적인 조건에 의해 혹은 개인의 행위나 이해·체험에 따라 달라지는 우연적인 상황으로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궁극적인 상황과는 구분된다.
궁극적인 상황은 인간존재 자체와 결부되어 유한한 인간에게 불가피하게 주어지는 상황으로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변화시킬 수도, 그렇다고 극복될 수도 없다. 궁극적인 상황은 인간존재의 보편적인 상황을 말하며, 그 상황 안에 인간의 개별적인 상황이 놓여있다.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이러한 인간존재의 상황을 ‘근본상황(Grundsituation)’이라 불렀고, 그 상황 안에 개개인이 처해있는 상황을 ‘한계상황(Grenzsituation)’이라 칭했다.
근본상황은 숙명적으로 놓여있는 보편적인 상황 그 자체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고통·투쟁·죄책·우연 등이 속하며, 이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다. 근본상황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예외없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한계상황은 이러한 근본상황을 주체적·실존적으로 홀로 겪는다는 점에서 개별적인 나의 고유한 ‘실존적 체험’이다. 한계상황은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부정하거나 제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가 부딪쳐 ‘난파(Scheitern)’하는 거대한 ‘벽’이다.
그렇다면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한계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한계상황을 부인하거나 합리화하면서 은폐한다. 그러나 야스퍼스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계상황을 한계상황으로 수용하고 그 안으로 들어서는 태도다. 인간의 깊은 절망을 통해 한계상황으로 들어선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절망의 체험은 실존으로 도약하는 장소인 동시에 삶의 발판을 다시 얻게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위기가 곧 기회’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계상황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견고하게 짜인 ‘사고의 틀’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자유 안에서 무한한 자기 가능성을 향해 결단해 가는 ‘실존조명(Existenzerhellung)’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계상황으로부터 새로운 경험을 이끄는 자기의식은 주체적이며 고유한 체험에 기반한 것으로서 개념이나 사회적 규범이 아닌, 자유로운 실존적 결단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므로 한계상황은 회피하거나 성급히 체념하기보다는 직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자각하는 것은 ‘철학적 자기 계몽’에 비유될 수 있다. 어두운 심연 같은 실존을 이해하고 견지하는 일은 사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실존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계상황 앞에서 진정으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성찰하고, 불가능한 일에 힘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한계상황 자체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기 계몽의 철학적 통찰을 통해 그런 한계상황 속에서도 삶을 유지하고 견딜 수 있는 유용한 덕, 즉 침착(沈着)·용기·인내 그리고 사랑을 키워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소중한 것을 한계상황에 직면하지 않고는 결코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계상황은 비본래적 삶의 나를 본래적 삶의 참된 실존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삶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