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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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청년들을 위한 생명 지킴 안내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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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 8월 30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주간 일반 알현을 마치고 부부와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두 당사자가 자신의 성적인 행동에 대하여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OSV


제5장 그대만을 영원히

전개 2. 인간적인 사랑의 목표 : 하느님다운 ‘진정한 사랑’


인간의 위대함은 유한함을 지닌 존재이면서도 무한과 영원을 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불행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자신의 사랑이 어설프거나 우습거나 보잘것없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지닌 사랑의 마음 또한 유한하지만 동시에 영원하고 완전함을 지향하는 ‘진정한 사랑’이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사랑이 성적 즐거움과 생명을 온전히 품으면서 동시에 영원을 담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인격적인 사랑이 인간적 한계를 넘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리스 철학자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는 “성교 뒤에 모든 동물은 슬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정적인 성교가 끝난 뒤에 사람들은 무언가 더 큰 가치를 놓쳤다는 허전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인격과 존재의 지향을 드러내는 성교는 그 시작과 결합 그리고 마치고 난 뒤에도 온전히 자신과 상대를 지향하며 의식하고 존중해야 더 큰 가치를 품을 수 있다는 지혜를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사랑은 자신과 상대방을 위한 선한 목적에 기여하는 인격적인 사랑을 지향해야 하며, 함께 나누는 성적 행동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랑의 행동이어야 합니다.

성인이면 누구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성적 행동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행동이기에 자신과 상대에 대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는 나이나 사회적 신분, 행위 능력 등에 따라 도덕적으로나 사회법적으로 성적 행동에 조건과 제한을 둡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에 관한 기준이나 제한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제시하는 기준은 성적 행동의 목적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자신이 지니는 인간적인 사랑을 하느님답게 이루어 ‘진정한 사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전개 3. ‘진정한 사랑’의 조건

성관계가 인격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느 한쪽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맺어진 관계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두 당사자가 자신의 성적인 행동에 대하여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현재 순간의 성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위 뒤에 따라오는 모든 상황과 그 상황과 관계된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모든 일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고, 실제로 책임질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가 없거나 책임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행동이라면 인격적이거나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는 것과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 이 두 가지만이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조건일까요? 책임감을 느끼며 자유로운 선택으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상대방을 열정적인 욕구로만 대하였다면, 이러한 성적 관계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을 욕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의 행동을 인격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뿐더러 누군가에게 그런 대우를 받고 행복해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적 행동과 성관계가 인격적이고 ‘진정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성적 행동에서 이기적인 욕구를 구분해 내야 합니다.

이기적인 욕구가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지는 성관계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증여하고 또한 그렇게 자신에게 증여된 상대방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인격적 친교를 이루어 일치하고 고유하게 현존하며 마침내 충만함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이 사랑의 이름으로 배제된다면, 이러한 성관계를 ‘진정한 사랑’의 행위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서로가 사랑하기는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생명의 출산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과연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을 임의로 제한하는 행위는 자신과 상대방의 성적 능력을 부인하는 행위가 되고, 나아가 상대방에게 자신을 온전히 증여할 수도 없고 상대방을 온전히 수용할 수도 없는 관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성관계를 통하여 창조되는 생명을 수용할 수 없는 관계는 두 사람의 미래도 담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성적 존재인 인간이 상대방에게 상호 인격적 자기 증여와 수용을 통해서, 사랑과 일치 그리고 생명 창조의 가능성을 수용하는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함께 나누어 봅시다

다음 사항의 장단점(이익과 손해)을 기록해 보고 서로 나누어 보세요.
1) 독신과 혼인
2) 자녀 출산과 자녀를 출산하지 않음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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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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