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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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아픈 세상의 꽃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부활의 삶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09. 파스카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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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습을 해체하는 고난을 통과한 애벌레는 꽃들에게 희망을 건네는 나비로 비상한다. 생명의 씨앗을 품은 나비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라 나보다 더 아픈 세상의 많은 꽃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부활을 살아야 한다. 뉴시스

 


올라가야만 한다. 꼭대기 어딘가에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새카맣게 떼 지어 올라가며, 서로를 밟고 밀치고 밀쳐지며 아득한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른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누군가는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또 다른 이는 악착같이 버티며 위로 향한다. 숨이 막혀온다.

트리나 폴러스의 그림책 「꽃들에게 희망을」 속 가장 인상 깊고도 슬픈 장면이다. 정체 모를 꼭대기를 향해 기를 쓰고 오른다. 밟느냐, 밟히느냐의 경쟁 속에서 점점 지쳐가고, 의심하고, 분노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멈추는 순간 곧 패배자가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경쟁 사회와 다르지 않다. 최고가 되기 위해 헛된 욕망을 품고, 때로는 자신을 착취하며 살아간다.

진정한 희망은 높은 꼭대기가 아니라, 오히려 어둡고 컴컴한 ‘고치’ 속에서 시작된다. 이야기 속 노랑 애벌레는 어느 늙은 애벌레에게서 “지금의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커다란 도전 앞에 선다. “목숨을 버리라는 말인가요?” 그러자 “겉모습은 죽지만 참모습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 이 희망은 타자와의 경쟁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싸움에서 싹튼다.

누에는 동그랗게 말고 엮고 돌리면서 고치를 짓는다. 마치 장례 의식처럼 한 올 한 올 실을 뽑아, 어둡고 좁은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녹여낸다. 자신을 해체하는 고통과 인내를 감내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마침내 미세한 틈이 생기고, 단단한 벽이 찢어지고 날개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생명의 씨앗을 품은 나비가 되어 밖으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세상 모든 꽃들에게 희망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저마다의 ‘고치’를 가지고 산다. 고치는 나비가 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종종 ‘숨는 장소’ ‘도피처’가 된다. ‘코쿤(cocoon) 족’이라 불리는 현대인은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플랫폼 속에 자신만의 안락한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 은둔·안주하려 한다. 여기에서 타인에게 상처받아 문을 닫아걸어 칩거하기도 하고, 보호받기 위해 숨기도 한다. 하지만 고치는 안전한 도피처나 아늑한 휴식처가 아니다. 자신을 해체하고 참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인고의 자리다. 변화가 두려워 어둠의 벽을 뚫고 나오지 않으면, 그저 번데기를 감싸는 껍질에 갇혀 살아갈 뿐이다.

생명은 언제나 죽음을 통과해 탄생한다. 죽음을 지나야 산다. 그렇기에 진정한 희망은 꼭대기가 아니라 고치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몸이 일그러지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비로소 두꺼운 껍질로부터 해방된다. 어둠의 벽을 뚫고 나와야 빛을 맞이하고, 좁은 틀을 깨고 나와야 날개를 펼칠 수 있다. 생명의 씨앗을 품은 나비는 꽃들에게 눈부신 희망이 된다. “나비에게 희망을”이 아니라 “꽃들에게 희망을”인 이유다. 나 혼자 안주하고 싶은 어두운 고치의 벽을 뚫고 나와야 비로소 ‘우리’라는 세상으로 건너간다. 죽음을 지나 생명으로, ‘나’에서 ‘너’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신비, 누군가의 꽃이 되고 사랑이 되는 부활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끝없는 경쟁의 꼭대기인가, 아니면 고요한 고치 안에서 껍질을 녹여내고 있는가. ‘나’를 넘어 ‘너’로 향할 때, 우리는 마침내 날아오르는 한 마리 나비가 된다. 변화를 외면한 고치는 익숙한 자기 자신만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해체하는 고난을 통과한 애벌레는 꽃들에게 희망을 건네는 나비로 비상한다. 나 홀로 안주하며 도피하는 고치는 결국 무덤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고의 고통을 견디며 변화를 선택한 고치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새롭게 태어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영성이 묻는 안부>

현대를 사는 우리 삶은 애벌레처럼 치열하게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남들보다 더 올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세상의 외침 속에서 우리는 지치고 상처받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저자 트리나 폴러스는 진정한 희망은 꼭대기가 아니라 고치 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고치는 도피의 공간이 아닙니다. 나를 버리고, 나를 바꾸고,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부활의 통로’입니다. 겉모습은 죽지만 참모습은 새롭게 살아나는 자리입니다. 나 혼자만 머물며 안주하고 도피하는 곳이 아닌, 두꺼운 벽을 온몸으로 뚫고 나와 하늘을 날기 위해 준비하는 수련의 장소입니다.

어둡습니까? 아프십니까? 고통스럽습니까? 혹시 지금 우리는 끝없는 꼭대기만을 향해 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디지털 고치 속에 숨어버렸나요? 고치 속에 혼자 숨고 싶을 때,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칠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의 씨앗을 품은 나비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라 나보다 더 아픈 세상의 많은 꽃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찬란한 부활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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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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