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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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삶에서 무조건 제거해야 할 질병인가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17.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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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불안사회’라 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여러 이유로 불안을 느낀다. 캐나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1931~)는 「불안한 현대사회」에서 불안이 현대사회의 병폐인 ‘만연한 개인주의’ ‘도구적 이성의 지배’ ‘정치적 자유의 상실’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1959~) 또한 「불안사회」에서 현대사회를 불안으로 특징짓고, 그 근본 원인이 ‘희망의 상실’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은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 증상을 인간의 병리학적 현상으로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진단한다.

과연 불안은 삶에서 무조건 제거해야 할 질병인가?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병리학자였던 철학자 칼 야스퍼스(1883~1969)에 의하면 불안은 인간에게 빈번히 나타나는 매우 고통스러운 정서적 느낌이지만 어떤 대상을 제거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피해갈 수 없는 인간 실존의 근본 조건이자 한계상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현존재의 근본 상태다.

이런 실존적 불안과 관련해 야스퍼스보다 앞서 깊은 통찰을 했던 철학자는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다. 그는 「불안의 개념」에서 불안이 “인간 본성의 완전성에 대한 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불안은 대상지향적 특성을 가진 ‘공포’와는 달리 대상이 없는 ‘무규정성’의 특성이 있다. 이는 불안이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함으로써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불안은 인간 정신의 자유에 근거하며, 인간이 자기 실존의 본래성을 획득하기 위한 계기다. 이런 불안을 우리가 회피하려 한다면 이는 인간 실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불안의 근본 원인은 인간 정신의 ‘자유’에 있다. 인간이 진정한 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홀로 자유롭게 결단하는 자가 되어야 하지만,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 앞에 선 인간은 현기증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바로 ‘자유 앞에서 느끼는 현기증’을 키르케고르는 ‘불안’이라 불렀다.

예측 불가한 무한한 자유의 순수한 가능성 앞에 각자가 홀로 책임 있게 설 때 얼마나 불안할지 한번 상상해 보라! 불확실성 앞에서 선택의 가능성이 무한히 클수록 역설적으로 결단은 그만큼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오직 순수한 가능성으로서의 ‘무’ 앞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결단하는 그 순간은 바로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한다는 것은 곧 자유의 순수한 가능성 앞에서 용기 있게 선다는 것이며, 이를 직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불안을 자기 존재의 가능성을 문제 삼는 현존재가 ‘무’ 앞에서 느끼는 ‘정황성(情況性)’으로 규정한다. 인간은 세계 내에 존재하는 한 기본적으로 불안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으며, 이를 결코 피할 수 없다. 불안은 자기 존재의 모든 가능성을 절대적이며 최종적으로 무화시키는 죽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안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자기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존재의 가능성을 향해 기투(企投, 나아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불안이란 본래의 자기를 찾는 계기인 만큼 우리는 불안을 내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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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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