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흙을 가까이할 때 비로소 사람다움을 회복한다. 흙은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감각의 원천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8년 쿠바를 사목 방문한 첫날 공항에서 어린이들이 가져온 쿠바 흙에 입맞춤하고 있다. OSV
“행복은 흙을 만지는 손에서 온다.” 한 철학자의 말이다. 인간은 흙을 가까이할 때 비로소 사람다움을 회복한다. 손은 세상과 관계를 맺는 통로이고, 흙은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감각의 원천이다. 흙을 만지는 손은 살아있는 세계와 교감하는 실존의 통로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존재를 인식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바로 그 감각적 교감에서 진정한 행복이 움튼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흙과 멀어지고 있다. 지구의 살갗인 흙은 메말라가고, 우리의 손은 화면 위를 스치며 세상과의 직접적 접촉을 잃어가고 있다. 시각 중심의 활동이 일상이 되면서 눈은 혹사당하고, 촉각을 통해 느끼던 세계의 진짜 아우라는 점차 사라진다. 손으로 부대끼며 체험하는 관계보다는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간접적인 관계에 익숙해지고, 멈춰 사색하기보다는 즉각적인 검색과 반응을 좇는다. 기다림과 느림·관조는 이제 ‘지루함’이라는 이름 아래 밀려나고 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창세 2,7) 인간은 흙을 만지는 하느님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흙을 만지는 행위는 피조물로서 자기를 인식하고, 창조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는 영적 여정이다. 생태심리학은 인간의 정신 건강이 자연과의 단절로 인해 약화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흙을 만지는 일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창조질서에 참여하는 소명이다.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창세 1,11) 땅은 단순한 자원이 아닌 생명을 품는 존재라는 선언이다. 땅은 정화하고 치유하며, 생명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품이다.
이러한 흙은 생명을 품고 자라게 하는 ‘토양’이라는 점에서 여성성과 깊은 상징적 연관을 지닌다. 하느님께서는 여성을 단지 생물학적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품고 기다리며 돌보는 ‘장소’로 빚으셨다. 흙이 생명을 잉태하듯, 여성도 생명을 품고 잉태하며 기른다. 흙과 어머니는 생명을 위한 ‘품’의 사명을 함께 지닌 존재다. 수용과 기다림, 돌봄과 희생이라는 여성적 가치는 생명을 지속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며, 신앙 또한 바로 이 토양 위에서 자란다.
5월은 생명의 계절이자 어머니의 달이다. 인간의 생명을 품어주신 어머니, 말씀을 품으신 성모님은 우리의 ‘고향’이자 ‘근원’이다. 신앙은 이 여성적 토양 위에서만 자랄 수 있다. 신앙은 기다림과 신뢰, 감각과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인격적 응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흙과 동시에 어머니의 여성성과 신앙도 함께 잃어가고 있다.
생명을 품고 순환시키는 여성적 가치는 ‘느림’과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속도와 효율, 통제와 생산성이 대신하고 있다. 흙과 여성성의 미덕 안에서 잃어버린 존재의 뿌리를 다시 회복해야겠다. 흙을 만지시는 하느님의 손에서 비롯된 우리는, 그 근원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인간다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의 신앙과 성소가 싹트게 될 것이다.
신앙이 없는 곳에서는 성소도 자라지 않는다. 감각이 사라지고 흙에서 멀어진 디지털 세계에서 신앙은 클릭 가능한 정보로 축소되고, 하느님은 알고리즘 속 선택 항목으로 전락한다. 신앙과 성소의 상실은 단순한 종교의 쇠퇴가 아니라, 감각을 잃고 존재의 근원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까. 흙과의 단절은 곧 인간다움의 단절이며, 신앙의 단절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러기 위해 미끄럽고 부드러운 디지털 기기에 묶인 우리의 손은 느리고 울퉁불퉁한 생명을 품는 손으로 해방되어야 한다. 흙을 만지는 손에서 행복은 조용히 움트고, 생명을 품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하느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잉태하고 기다리며 함께 자라는 시간 속에서 그리고 인간다운 인간, 신앙다운 신앙 안에서 성소는 비로소 싹이 트고 열매 맺게 될 것이다. 흙과 여성성의 깊은 품 안에서, 참된 행복과 부르심의 길을 열리기를 바란다.
<영성이 묻는 안부>
흙을 손으로 일구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 있는 땅, 기억하고 품어주는 흙은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았지요.
5월 어머니의 달이자 성모 성월을 맞아 우리는 성모님처럼 조용히 듣고, 품고, 기다리는 마음을 배웁니다. 이 시기 교회는 성소 주일을 지내며 성직자와 수도자를 위해 기도하지만, 정작 그 길을 걷고자 하는 젊은이는 점점 줄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흙의 감각, 어머니의 품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성소는 손으로 흙을 만지듯, 몸과 마음으로 살아낸 신앙체험 속에서 자라납니다. 흙처럼 자신을 낮추고 품을 줄 아는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는 오랜 세월 페루에서 선교사로 살아오셨습니다. 그 땅의 거친 흙은 어느새 그의 손끝에 삶의 흔적으로 새겨졌겠지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생명을 품고, 상처를 감싸며 조용히 치유하는 흙처럼, 온 세상에 평화의 싹을 틔우는 교황님의 걸음에 하느님의 숨결이 머물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