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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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려면 행운과 불운에도 긍정적 태도 필요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20.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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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알랭(Alain/Emile-Auguste Chartier, 1868~ 1951)은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알랭은 그의 「행복론」(1928)에서 잎이 무성한 100년 묵은 느릅나무에 송충이가 번식할 것을 걱정한 청년이 결국 비관하여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평소 불행해지기는 쉽지만, 행복해지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소소한 일상에 숨겨진 행복을 찾는 일은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 낙관적 태도보다는 비관적 태도에 더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에우다이모니아(ε?δαιμον?α)’는 ‘에우(ε?/좋은)’와 ‘다이몬(δα?μ ων/신, 신령)’이 결합한 단어로서 어휘적으로 ‘좋은 신령이 깃든 상태’, 다시 말해 ‘좋은 삶’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행위는 어떤 ‘좋음(?γαθ? ν, 아가톤/선)’을 원하며, 다른 것이 아닌 그 자체 때문에 원하는 것을 ‘최고선(τ? ?ριστον, 토 아리스톤)’이라 하고 이를 ‘행복’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때의 최고선은 플라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의 최종 목적인 형이상학적 의미의 최고선(τ? ?γαθ? ν, 토 아가톤)이기보다는 삶의 목적과 자기완성과 관련된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최고선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인간의 고유한 본성을 활짝 꽃피우는 것, 즉 인간의 본성적 기능을 충만히 발휘하는 데 있다면서 이를 ‘관조적 삶’이라 정의한다. 최고선으로서 행복은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기에 필연적으로 자족적이어야 하며, 탁월성(덕)·완전성·지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사유활동인 관조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육체적으로 한계를 지니지만 자기 고유의 본성인 정신 활동을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육체적 결함으로 인해 순간 불행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신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삶에서 이상적인 행복을 누리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우선 자기 본성과 관련하여 탁월함의 상태, 소위 덕스러움을 최고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이런 완덕을 이룰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행복을 뜻하는 독일어 ‘글뤽크(Glück)’는 흥미롭게도 ‘행운’의 뜻도 가지고 있는데, 행운은 어원적으로 좋거나 나쁜 어떤 일이 우연히 ‘이루어짐’을 뜻하는 ‘게뤽케(Gelücke)’에 뿌리를 두고 있다. 행운을 뜻하는 라틴어 ‘포르투나(fortuna)’ 역시 행운이나 불운을 모두 가져오는 로마 신화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원적으로 이런 중의적 의미를 지닌 행운이 행복과 같은 단어로 사용되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이와 관련하여 ‘삶의 기예 철학’으로 유명한 현대 독일 철학자 슈미트(Wilhelm Schmid, 1953~)는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이렇게 운과 관련해 부정적인 경우에서조차 긍정적 태도를 지닐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행복을 위해 지나치게 ‘행복한 우연’(행운)에 기대거나 혹은 반대로 ‘불행한 우연’(불운)을 탓하기보다는 어느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운명을 거슬러 싸우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치유를 위한 행복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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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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