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희년 ‘희망의 순례자들, 희망을 찾아 떠난 순례길에서 우리는 과연 어디쯤 와 있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묻는다. 위기의 시대에 희망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이에 대해 신앙이 알려주는 답은 무엇보다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들이 살았던 삶과 신앙을 회상하며 그들이 간직하려 했던 희망이 어떤 것이었는지 찾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굴곡진 한국사에서 희생된 이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구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믿는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모든 이는 우리를 ‘희망’이라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게 함으로써 오늘을 새롭게 살도록 한다고.
오늘은 어머니께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모친께서는 2017년 췌장암 판정을 받으시고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하시다 암이 재발되어 2년여의 항암치료 끝에 2022년 예수 승천 대축일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딱 5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더니, 정말로 5년 후 돌아가셨다. 필자는 농담 삼아 말한다. “우리 어머니는 아무 날에나 안 돌아가셔요.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오르시려고 그 날을 선택하신 것 같아요.”
“골롬바야, 나는 좀 억울하다, 억울해.” 한 지인에게서 전해 들은 어머니의 이 말씀에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담겨 있다. 병고로 인한 괴로움 중에 이런 말씀도 하셨다. “신부님,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엄마는 빨리 가고 싶어. 하느님께서 빨리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어.” 그러시다가도 “아직까지 살려놓으신 걸 보면 무슨 뜻이 있으신가 봐”라고도 하셨다. 병고로 인해 어머니의 희망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로 인해 어머니의 믿음과 희망이 더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필자의 권유로 어머니는 수술 후 일기를 쓰기 시작하셨다. 어머니 선종 후 장롱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하신 일기장 더미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일기장에는 수술 후부터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어머니께서 사셨던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병으로 인한 괴로움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대부분 소소한 일상을 찬란히 살아가며 바치는 기도였다.
“잠은 모자랐지만 그 시간이면 일어나는 습관으로 나 자신이 괴롭다. 정리를 하고 빨래를 개고 나간다. 그래도 식사하고 원안리 밭을 다녀와 쌍봉산을 가는 데 좀 힘이 든다. 둘레길을 돌며 나무 사이사이 아름다움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그렇게도 철마다 옷을 갈아입히며 창조하셨는가? 그래서 우리 눈에 띄게 하시고. 감탄도 나온다. 그래서 앞에 누가 있든지 없든지 노래가 나온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마지막 시간들과 어머니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들은 내가 교회로부터 받은 희망이 어떤 것인지 묻게 하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우리는 희망할 수 있는가? 희망은 산 사람들만의 것은 아닌가? 곧 죽을 사람에게 희망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이 질문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이에게 남겨준 보석과도 같이 소중한 유산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우리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희망, 돌아가신 분들이 그토록 애타게 바랐고, 찾았던 희망이 무엇인지 헤아려보게 된다. 그리고 발견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들이 그토록 살고자 희망했던 내일이었음을 말이다.
이에 필자가 어머니에게 배운 교훈을 나누고자 한다. “삶이 얼마나 찬란한 것인지 알고, 지금 바로 그 삶을 찬란하게 살아라.”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