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생활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윤웅렬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담당)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벤베누토 티시 작 ‘그리스도의 승천’, 1510~1520년.


저마다 한 번쯤 상상해 보지 않았던가요.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시절, 아주 유명한 무협 만화를 재밌게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고전 소설 「서유기」의 내용에서 따온 ‘근두운’이라는 구름이 나왔는데,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만이 이 구름을 타고 날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 만화를 보면서 괜스레 저 스스로를 가늠해 보곤 하였습니다. ‘나도 근두운을 탈 수 있을까?’

오늘 우리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승천. 말 그대로 ‘하늘에 오른다’는 뜻입니다. 승천이라는 말에는 우리 신앙인의 ‘갈급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을 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날아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 곁으로 빨리 간다는 것. 구약성경에 승천하여 하느님 곁으로 간 인물이 두 사람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창세 5,24) 고작 한 구절에 불과한 에녹의 이야기와 달리, 엘리야에 대해서는 열왕기에 훨씬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1열왕 17,1-2 ; 열왕 2,18 참조) 한평생을 주님 말씀의 선포를 위한 예언자로 살았던 사람.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삶을 살았던 사람.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 이야기는,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사는 이를, 매우 드물게, 직접 빨리 데려가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승천은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일에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언제나 성령 안에서 사셨던 분. 그럼에도 가장 사람답게 사셨던 분. 보통의 경우라면 매우 드물었어야만 할 일이, 이 하느님의 아드님에게는 마땅히 일어나야만 할 일이라고, 제자들은 하늘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승천의 사건은 하느님과 인간을 급격히 만나게 합니다. 그렇기에 신심 깊은 신앙인일수록,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만큼 얼른 날아가 주님 곁에 머물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승천이, 염원이 되지 않고 현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제자들도 그 뜻을 깨닫고, 하늘을 바라보듯 땅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루카 24,52) 돌아가는 제자들의 발걸음이 구름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복음을 싣고 기쁨 속에 파견되는 이들은 이제 땅 위를 하늘처럼 날아다닐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이들을 통해 하늘과 땅이 급격히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윤웅렬 하상 바오로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담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5-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6. 3

묵시 3장 20절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