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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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현존 감각이 사랑과 소통의 길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15. 진정한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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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통이란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을 떠도는 현대인에게 이 ‘현존’의 감각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OSV

우리는 누군가를 비하할 때 흔히 ‘개’나 ‘돼지’ 같은 동물에 빗댄다. 인간을 동물로 표현하는 것만큼 모욕적인 말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정보의 지배」에서 스마트폰에 갇힌 현대인을 ‘가축’이라 표현한다. 노예는 억압을 인식하고 저항하지만, 가축은 자각조차 없이 시스템에 길들여진 채 복종한다. 우리는 디지털 기기에 매여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으며, 정보와 소비의 가축이 되어 진실을 분별하는 감각마저 잃어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점점 더 깊은 디지털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히 정보처리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은 이제 삶의 양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세상을 인식하는 감각, 사회 구조와 가치관, 개인의 심리와 영성, 나아가 존재 방식마저 디지털 환경 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기술은 중립적이며, 그 영향은 사용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지만, 미디어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 일상을 둘러싼 생태 환경이다. 하나의 기술이 인구의 10에게 수용되면 ‘트렌드’가 되고, 20가 사용하면 ‘문화’가 되며, 70 이상이 쓰게 되면 그것은 곧 ‘삶’이 되어 기존 틀을 무너뜨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보급률이 98에 이른 오늘날 디지털 기기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수단이자 삶의 본질적 매개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디지털 생태가 우리 삶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모두가 과속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나 혼자 느리게 갈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의 ‘느림’은 종종 고립과 소외를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어쩌면 그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과의 깊은 연결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기는 단순한 외부 연결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뇌 구조와 감정 패턴·인지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의 뇌는 뛰어난 적응력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환경에 맞춰 변화해왔지만, 오늘날 디지털 환경은 인간을 점점 더 의존적이고 퇴행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평소 시간 관리를 잘하던 이들도 스크린 앞에서는 통제력을 잃고, 독서력과 경청력을 갖춘 이들조차 집중력 유지를 어려워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주의 지속 시간이 짧아진 사회적 증상이기도 하다. 성장기 자녀를 스크린에서 현실로 이끌어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이 ‘도전’에 대한 ‘응전’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도전이 없는 인류는 퇴보하고, 응전할 힘이 없으면 소멸한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디지털 세대의 감각과 세계관은 기성세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디지털 이주민으로서 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는가? 단지 언어를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 감각과 사고의 깊이에서 참된 교감을 이루고 있는가? 이 간극을 메우는 응전이 없다면 교회의 언어와 영성은 점점 더 왜곡되거나 생명력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할 것이다.

진정한 소통이란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을 떠도는 현대인에게 이 ‘현존’의 감각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곁에 오셨다. 이는 실제로 함께하시는 사랑의 표현이며, 성령께서는 바람과 불·물과 흙 어디에나 현존하시는 위대한 소통자이시다.

이러한 하느님 현존을 알아차리는 일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좋아요!’에 무감각해진 채 그것을 ‘아멘!’으로 착각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더욱 중요한 영적 수행이 되었다. ‘지금-여기’에 머무는 알아차림만이 디지털의 거센 물살에 우리가 휩쓸리지 않게 하며, 작은 응전의 걸음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관계’입니다. 행복도, 사랑도 그 안에서 피어나죠.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 중심엔 언제나 ‘소통’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마을에 머무는 정주민이 아니라 디지털 유목민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유목민은 ‘함께 있음’을 갈망합니다. 실제로 만나지 않아도, 활동을 함께하지 않아도,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SNS 친구 맺기나 댓글, 실시간 반응으로 드러나지요. 우리는 여전히 혼자인 게 어렵고, ‘함께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진짜 소통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죠. 그건 함께 있음을 느끼고, 마음의 가치와 의미를 나누는 일입니다.

깊은 소통은 침묵과 경청 속에서 자라고, 조용히 곁에 머물며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연결 속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소통은 어쩌면 타인보다 먼저 자기 자신과의 ‘현존’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이 계시니까요. 홍보 주일을 맞아 디지털이라는 도전 앞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응전의 길은 바로 이 ‘현존’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소통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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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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