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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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주는 불편함에 감사하며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02) 행복을 주는 선의의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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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는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미움받고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의 처지에 대해 종종 언급한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겪는 모욕과 박해는 어떤 것일까? 막상 답을 하려니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라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지만, 예수님 때문에 겪는 일을 생각해보면 달라질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때도 있지만, 예수님 때문에 불편하고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다. 예수님 때문에, 그분의 제자이기 때문에 겪는 불편함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그 불편함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부서지는 아이들」(슈라이어, 웅진지식하우스)이라는 책을 읽으며 자녀 양육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는 ‘다정한 양육’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면서 미국의 양육과 교육 현실을 비판한다. 아이들을 위한 극단적인 보호가 ‘고통 면역력’을 길러주지 못해, 과보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불안장애와 공포증을 겪으며 사소한 혼란에도 무기력하게 반응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양육이 개인 성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회복력까지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의 현실을 지적하는 책이지만,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요즘 아이를 하나만 낳아 기르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 되어 자식이 바라는 것을 다 해주고 불편함 없게 양육하다 보니, 자기가 왕인 줄 알게 되고, 그렇게 자란 아이의 인성이 좋을 리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불편함은 나쁜 것이 아닌, 아이를 인간답게 양육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신앙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신앙이 주는 불편함이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우리를 신앙인답게 살게 해준다. 소위 ‘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불편함을 준다. 일상기도를 충실히 바쳐야 하고, 주일 미사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금육과 금식을 지켜야 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원수 같은 이웃을 용서해야 하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이를 찾아가 돕고, 교회를 위한 봉사에 참여해야 하는 등 신자이기에 지켜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자이기 때문에 겪는 불편함도 있다. 세상 사람과 다른 신앙적 양심에 따라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신자답게 행동해야 한다. 또 신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 신앙이기에 공동체 생활에 참여해야 한다. 불편한 이웃과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하고 성당 청소에 나가야 하며, 소공동체 모임 등에 소속되어 활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불편함이 없다면 나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그 덕에 지금처럼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불편은 나를 인간답게 살게 하고 신앙인답게 살게 한다. 또 예수님과 더 가깝게 살게 하고 그분을 더욱 닮아가게 한다. 바로 그러한 모습이 이웃에게 귀감이 되어 천주교에 관심을 갖고 입교하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신자이기에 겪는 불편함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밖에도 우리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자발적으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면, 우리가 더 깨어 있고 더 자극을 받으며 더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쉬운 게 좋은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게 좋은 것’이다. 물론 악의를 갖고 불편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선의를 갖고 나와 이웃을 불편하게 하기, 이 말을 갖고 하루를 살아보면 어떨까.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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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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