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아들 유다 타대오와 시몬 사도는 열혈당원으로 활동하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됐다. 엘 그레코 작 ‘성 유다 타대오, 성 시몬 사도’, 유화, 1608~1614, 스페인 톨레도 대성당.
유다 타대오
야고보의 아들 유다 타대오 사도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습니다. 그의 이름도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선 ‘타대오’(마태 10,3; 마르 3,18)로,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선 ‘야고보의 아들 유다’(루카 6,16; 사도 1,13)로만 소개됩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타대오와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같은 인물로 여겨왔습니다.
복음서들이 사도의 이름을 달리 표기한 것에 대해 여러 성경학자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혼돈하지 않도록 일부러 ‘타대오’라고 기록했을 것이라 설명합니다. 복음서에 열두 사도 명단 외에 이 유다의 이름이 딱 한군데 있는데, 바로 요한 복음 14장 22절로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라고 나옵니다. 이 표현으로 미뤄 사도 시대 초기 교회에서도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유다 이스카리옷을 구별하고자 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학자들 가운데엔 유다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유다 이름뿐 아니라 그리스식 이름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타대오는 ‘가슴’을 뜻하는 아람어 ‘타다’에서 비롯돼 ‘넓은 마음’을 뜻한다고도 하고, ‘하느님의 선물’을 뜻하는 헬라어 ‘테오도로스(Θε?δωρος)’의 축약형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유다 타대오와의 대화는 복음서에 딱 한 차례 나옵니다. 마지막 만찬 때 그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요한 14,22-24)
교회 전승에 따르면 유다 타대오 사도는 시몬 사도와 함께 열혈당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열혈당원(ζηλωτ?ς, 젤롯)은 ‘토라’ 곧 모세의 율법에 대한 열성이 빼어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과 그 동조자들에 대항해 이스라엘 민족 독립을 쟁취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무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6년에 갈릴래아 출신 유다가 주도한 반란을 계기로 민족주의 저항단체인 열혈당을 결성했지요. 이 내용은 사도행전 5장 37절에 짧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위경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는 유다 타대오 사도가 시몬 사도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하다 페르시아에서 창에 찔려(도끼로 참수형을 받았다고도 함) 순교했습니다.
시몬 사도
열두 사도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는 우리말 공관 복음서에는 시몬 사도를 모두 ‘열혈당원’으로 옮겨놓았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본문 성경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의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는 시몬 사도를 ‘가나안 사람’(마태 10,4 ‘Σ?μων ? Καναν?της’, ‘Simon Chananaeus’, 마르 3,18 ‘Σ?μωνα τ?ν Καναν?την’, ‘Simonem Chananaeum’)이라고 밝힙니다. 따라서 시몬 사도는 가나안 출신 열혈당원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시몬 사도가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카나 혼인 잔치의 신랑이었다는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천사에게서 예수님 탄생을 전해 들은 목동 중 한 명이었다는 설도 내려오고 있지요.
복음서의 문맥에 따라 시몬 사도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야고보·요한과 함께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잡이하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울러 그가 부르심을 받기 전에 열혈당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유다인으로서 정체성이 분명했고, 율법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몬 사도는 로마인의 협력자로 유다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던 마태오 사도와 분명 결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열혈당원의 시조는 ‘피느하스’입니다. 그는 우상을 숭배한 한 이스라엘 사람을 모든 공동체가 보는 앞에서 살해했습니다.(민수 25,6-13) 카르멜 산에서 바알 사제들을 죽인 엘리야 예언자(1열왕 18장)나 마카베오 가문의 시조로 유다교 신앙을 말살하려는 셀레우코스 임금 안티오코스 4세에 반기를 들고 무력 항쟁을 벌였던 마타티이스도 젤롯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젤롯 곧 열혈당원이 율법과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무력 항쟁을 했다면 반대로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며 은둔생활을 한 부류도 있습니다. 바로 ‘하시딤’입니다. 하시딤은 헬레니즘에 저항해 마카베오 시대 때부터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에 안티오코스 4세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도망가지 않고 부동자세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천 명이 이렇게 순교한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시몬 사도에 관해 신약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카나 출신 열혈당원이었다는 것뿐입니다. 위경 「시몬과 유다 수난기」 는 시몬 사도가 유다 타대오 사도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고, 톱질로 몸이 잘려 순교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