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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는 목표지향적 삶을 살아갈 때 발현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23.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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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야스퍼스(1883~1969)의 실존철학에 영향을 받은 ‘로고테라피’로 유명한 프랑클(1905~1997)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 ‘실존적 공허’에 빠지기 쉽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의미란 무엇일까? 의미는 어휘적으로 운동의 방향성을 뜻하는 말에 그 어원을 둔다. 코레트(1919 ~2006)에 의하면 의미는 이론적-의미론적으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뜻’과 실천적으로 목표 혹은 합목적성의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방향’의 두 가지 근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행위는 그것이 움직이는 일정한 방향성에서 의미를 얻게 된다. 삶의 의미는 무엇보다 우리가 목적을 갖고 방향을 잃지 않는 목표지향적 삶을 살아갈 때 발현된다. 따라서 삶의 목적 설정과 방향 잡기는 의미 충만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의미 발견은 이미 세계가 의미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전제한다. 후설(1859~1938)에 따르면 의미 발견은 지향적 의식 주체의 의미 대상(노에마, Noema)과 의미 작용(노에시스, Noesis)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 부여의 행위다. 그런데 하이데거(1889 ~1976)는 이런 지향적 의식 주체의 의미 부여 행위는 근본적으로 ‘존재’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의미 부여는 인간 현존재가 세계 안에 있는 존재자(사물)와 관계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자기 존재 가능성을 향한 ‘유의미성’에로의 기획투사를 말한다. 결국 의미는 인간 현존재가 그때마다 바로 자기 존재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서 발현된다. 이때 사물들은 오로지 현존재의 존재 가능과 관련하여 유의미성을 가지면서 일정한 사용 사태 속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세계가 이미 의미로 가득 채워져 있음은 세계 자체가 존재 가능과 관련하여 이런 기획투사를 통해 이루어진 ‘앞서’ 이해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이해된 유의미한 세계 안에서 자기 존재 가능성과 관련하여 유의미한 행위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계에서 발견하는 의미는 결코 고립되어 개별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의미 전체’의 의미 연관 속에서 파악된다. 여기서 의미는 의미 전체의 ‘의미 지평’뿐 아니라 절대적 존재 혹은 하느님과 같은 의미의 ‘최종 근거’로 나아간다. 하나의 개별적 사태는 의미 전체와 관련하여 그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 이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한계상황 속에 있다는 사실과 연결되는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죽음·우연 등은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채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의미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삶과 존재는 그 자체가 신비로운 만큼 그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야스퍼스는 “모든 상황은 의미를 넘어선 초의미 안에 의미를 지니지만, 그 의미는 자주 은폐되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은 절대적인 한계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의미에 헌신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초월자와 관계하는 실존적 결단을 통해 자기의 존재 의미를 그때마다 드러낼 뿐이다.

철학상담은 내담자의 자기 실존과 존재 의미를 밝히는 삶의 테스트 이해와 해석에 특히 관심을 가진다. 내담자의 고유한 삶의 경험이 의미 있는 텍스트로 전환될 때,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고 부여될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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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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