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로사 몰라스 이 바베 성인은 1815년 3월 24일 스페인 북동부의 타라고나 근처 레우스에서 태어나 로사 프란치스카 마리아 데 로스 돌로레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마리아 로사는 레우스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매우 경건한 부모 밑에서 자라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그가 17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그 지역에 퍼진 콜레라에 걸려 숨을 거뒀습니다. 마리아 로사는 첫영성체 이후 오랫동안 성소를 갈망했지만, 아버지는 딸이 집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로사는 아버지 곁에 머물며 가사를 돕다가 26살이 된 1841년 1월 레우스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공동체에 입회했습니다.
마리아 로사는 종교적 덕행뿐만 아니라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또 갈등 상황에 놓인 이들의 중재자로도 활약했습니다. 1844년 6월 11일 마르틴 주르바노 바라스 장군이 레우스를 포격했을 때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도시에 남아 휴전을 성사시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마리아 로사는 1849년 동료 자매들과 토르토사로 가 그곳 고아·노인·장애인들을 돌보는 ‘애덕의 집’ 운영을 맡게 됩니다. 그가 애덕의 집에 처음 갔을 때 그곳에서 지내는 이들은 말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으로 ‘비참의 집’이라 불렸을 정도였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마리아 로사는 요양기관의 위생체계와 환자 돌보는 방법을 현대적으로 개선해나갔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요양기관의 질서를 확립했습니다. 책임자로 있는 8년 동안 요양기관에 요구되는 그 시대의 의학적 요청을 받아들여 개선해나간 것입니다. 그러자 토르토사 당국은 마리아 로사에게 학교와 시립병원의 운영도 맡겼습니다.
지역 주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위로를 주는 마리아 로사의 헌신과 탁월한 행정 능력, 성덕을 보고 1857년 3월 14일 ‘위로의 수녀회’ 설립을 허락했습니다. 마리아 로사는 이듬해 11월 14일 수녀회 명칭을 ‘위로의 성모 수녀회’로 정하고, 하느님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비의 사도직을 수행했습니다. 일생 동안 헌신했던 마리아 로사는 1876년 6월 11일에 토르토사에서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마리아 로사의 시성식 강론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러면서 온갖 위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전하였다”며 “이 여인의 삶 자체가 하느님 자비와 위로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표시”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이에게 ‘자비의 사도’이자 ‘위로의 사도’로 불리는 마리아 로사는 자신의 직무를 실용적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행한 인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