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의 삶이 그가 생각한 메시아의 상과 너무나 달라 주님을 배반하고 팔아넘겼다. 마티아는 유다 이스카리옷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선출된 사도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지켜본 인물이다. (왼쪽)조토 작 ‘유다의 입맞춤’, 프레스코, 1303~1305, 이탈리아 파도바 스크로벤니 소성당. (오른쪽) 루벤스 작 ‘성 마티아 사도’, 유화, 1611,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유다 이스카리옷
유다 이스카리옷에 관해 신약 성경은 그가 열두 사도 중 한 명이었으나 예수님을 배신했고, 스스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 외엔 어떠한 내용도 전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요한 복음서는 그를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6,17; 13,26)이라고 밝힙니다.
히브리말 ‘이스카리옷’은 ‘카리옷 사람’이란 뜻입니다. 카리옷은 구약 시대 유다 지파 땅 헤브론 인근에 위치한 ‘크리욧 헤츠론’(여호 15,25; 아모 2,2)을 일컫습니다. 이는 유다 이스카리옷이 갈릴래아 출신인 다른 사도들과 달리 유다 출신임을 알려줍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스카리옷(Ισκαρι?της)을 헬라어 ‘시카리오스(σικαριοs)’의 변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를 따르면 유다 이스카리옷은 우리말로 ‘단검으로 무장한 자객 유다’라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들이 말하던 이스카리옷은 열혈당 가운데에서도 가장 과격주의 분파였습니다. 그래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주님께 부르심을 받기 전에 로마 제국에 맞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무력 항쟁을 하던 열혈당원의 일원으로 자객 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스카리옷’을 “예수님을 팔아넘길 자”(요한 6,71; 12,4)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신한 이유가 뭘까요? 복음서는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계기가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린 사건(마태 26,6-13; 마르 14,3-9; 요한 12,1-8)과 관련 있음을 말해줍니다. 공관 복음에서는 이 광경을 본 제자 몇몇이 “왜 저렇게 허투루 쓰는가?”라며 여인을 나무랍니다. 하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주는 게 더 좋지 않으냐며 불평을 하지요.
그런데 요한 복음서에서는 오직 유다 이스카리옷만이 불평을 터뜨리죠.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라면서요. 요한 복음서 저자는 유다 이스카리옷이 이렇게 불만을 표시한 것은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고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루살렘 수석 사제들을 찾아가 은돈 서른 닢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그렇다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유가 단지 돈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것을 보고 산헤드린으로 찾아가 받은 돈 전부를 내던지고 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아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다수 신학자는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 삶이 그가 기대한 메시아 상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느님 나라가 지상의 왕국이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가 정말 열혈당원 자객 출신이었다면 당연한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과 관련해 마태오 복음서는 목매달아 죽었다(27,3-10)고 하는 반면, 사도행전은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밭을 산 뒤 거꾸로 떨어져 배가 터지고 내장이 모조리 쏟아져서 죽었다(1,15-20)고 합니다.
마티아
마티아 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사도가 아닙니다. 그는 사도들이 주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뽑은 사도입니다. 헬라어 ‘마티아’는 히브리어 ‘마티티아’에서 나왔는데 우리말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마티아 사도는 사도행전에서 딱 두 번 나옵니다.(사도 1,13.26) 사도행전이 전하는 마티아 사도 선발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사도 1,15-26)
어느 날 120명가량 되는 형제가 모여 있을 때 베드로 사도가 일어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직책을 대신할 사도를 뽑자고 제안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사도를 뽑아야 한다”고 단서를 붙이지요.(사도 1,21-22) 이 제안에 따라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로도 불린 요셉과 마티아가 후보로 선발돼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합니다.
사도행전은 마티아 사도가 비록 처음부터 열두 사도에 속하진 않았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주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사도들과 줄곧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지켜본 인물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전승에 따르면 마티아 사도는 유다 지파 출신으로 베들레헴의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사도로 뽑힌 후 그는 유다와 콜키스(지금의 그루지아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다 세바스토폴리스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승은 그가 유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고, 그에게 돌을 던진 유다인들은 죽은 마티아 사도의 목을 도끼로 내려쳤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헬레나 성녀에 의해 로마로 옮겨졌고, 이후 독일 트리어 베네딕도회 성 마티아스 수도원에 안장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