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매일 미사에 참여하며 성체를 모시고 하느님과 대화했다. 어린 나이에도 누구보다 성체를 향한 깊은 신심을 지녔던 복자의 이미지에는 늘 성체가 함께 표현돼 있다. 사진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카를로아쿠티스협회 사무실 현판. OSV
성체성사를 할 수 없다면
우리의 뇌리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한 장면이 있습니다. 2020년 3월 27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비가 내리던 그날 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텅 빈 광장에서 홀로 기도하시며 전 세계를 향해 위로의 강복을 주셨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한복판에서 우리는 방송과 인터넷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교황님과 일치하여 한마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그 시기는 전례 없는 위기였습니다. 모든 성당이 문을 닫고 미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 몇 달 동안 우리는 성체성사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고, 방송 미사를 통해 신령 성체를 하며, 다시 성당에 가서 영성체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통계는 우리가 아직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현실을 본다면,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다시 이렇게 외칠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참으로 미사의 가치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성체 안에 계신 당신을 우리가 먹고 마시도록 양식으로 내주시는 주님을 받아 모시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희생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날마다 성당에 갈 것이고 불필요한 많은 것을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은총의 원천
카를로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는 매일 미사에 참여했고, 성체를 받아 모시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 어서 오세요. 제 안에 들어오셔서 당신 집처럼 편안히 지내세요!” 미사 전후로는 감실 앞에서 머물며 주님께 사랑을 드렸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매일 미사에 오는 카를로를 보면서 감동받았지만 약간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날마다 미사에 오는 어린 소년을 본다는 건 참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교회는 성체성사를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4항)이라고 가르칩니다.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일찍부터 이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성사는 일곱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에 다른 여섯 가지를 더한 것입니다. 여섯 성사는 은총을 주거나 회복합니다. 그러나 성체성사는 은총의 원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성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이 성체성사 ‘안에서’ 이 성사와 ‘함께’ 이 성사를 ‘위하여’ 더 많은 은총이 부어집니다.”
성체의 주님 현존에 대한 굳건한 믿음
카를로는 어린 나이임에도 성체의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 :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현상)를 깊이 깨닫고 있었습니다. 카를로의 다음 말들은 성체성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재확인시켜줍니다.
“예수님께서 한 조각의 빵 속에 숨어 계시다니 얼마나 독창적인가요. 오직 하느님께서만 그처럼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어요!” “햇볕 앞에 오래 있으면 피부가 타지만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 앞에 오래 머물면 성인이 됩니다.” “이 ‘초실존적인 빵’에는 모든 덕의 맛이 담겨 있습니다! 그 빵을 받아 모시러 다가가며 이런저런 덕들을 얻고자 갈망하면서 주님 가르침에 순종합니다.” “매일 성체에 다가간다면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하늘 나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
첫영성체를 하던 날, 카를로는 가족과 함께 페레고의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흰 양 한 마리를 몰고 길을 가로지르던 양치기를 보았습니다. 그 양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셨다고 미소 짓던 그 소년은 짧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영성체를 하고 그 순간을 떠올리며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모든 것에 감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