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17. 리더십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끝난 후 개표가 이뤄지고 있다. 뉴시스
거대한 하마가 똥을 흩뿌리는 순간, 연못은 순식간에 누렇게 물든다. 언뜻 보기엔 지저분하고 불쾌하지만, 이 똥은 연못 생태계를 지탱하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 소화되지 않은 풀은 곤충의 서식지가 되고, 달팽이와 물고기에게는 귀한 먹이가 된다. 하마는 아무런 의도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이지만, 그 존재만으로 자연 생태계의 연결망을 지탱하는 하나의 고리가 된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이러한 생태적 리더십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기술이 만들어낸 디지털 생태계에서는 힘의 ‘소유자’가 더는 분명하지 않다. 힘은 특정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고 소유되지 않으며, 공유되고 분산되며 끊임없이 순환된다. 디지털 세계에서 리더십은 위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향력을 갖는 이는 ‘연결된 존재로서의 리더’, 즉 관계 안에서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처럼 현대의 권력은 단선적이거나 중앙 집중적이지 않다. 권력은 사회 전반에 스며든 ‘미시 권력’의 형태로 작용하며, 이 힘은 네트워크를 통해 분산되고 다시 연결된다. 디지털 시대의 리더는 생태계 속 연결망을 지탱하는 존재다. 이 힘은 누군가의 의도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부여받는 힘’이다.
이렇듯 상호 부양과 순환의 원리는 리더십의 본질을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 오늘날 진정한 리더는 하마처럼 존재만으로 공동체의 연결망을 유지하고 살리는 ‘생태적 리더’다. 반면 자신의 의지를 앞세워 통제하려는 권력자는 오히려 쉽게 저항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위계적 힘을 동경한다. 전통적으로 권력(power)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지배의 방식이었다. 기업의 사장, 가정의 아버지, 교회의 사제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요구되는 진정한 권위는 더 이상 강제로 행사되는 힘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아래로부터 부여받는 힘이다. 영어 ‘empower’가 ‘권한을 부여하다’는 뜻을 지닌 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권위는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신뢰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적 존재라는 점이다. 이러한 권위는 하마의 똥처럼 거창하거나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연결점에서 비롯되며,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순환적 원리를 따른다.
가톨릭교회가 강조하는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 곧 ‘함께 걷는 여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진정한 권위는 경청과 참여를 통해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나와 너, 위와 아래, 중심과 주변이 함께 가는 길 위에서 드러난다. 공동 식별을 통해 형성된 권위는 아래로부터 자연스럽게 위임된다. 이는 연결과 돌봄의 생태적 관계망 안에서 자라나는 영향력이다. 따라서 누구도 힘을 독점할 수 없으며, 누구도 권위를 스스로 주장할 수 없다. 권위는 관계 속 신뢰를 통해 ‘부여받는’ 것이며, 직위나 역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고 연결하는 생태적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삶의 그물망 속에서 자라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의 리더십은 연결망 안에 ‘현존’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나 단순한 순응이 아니라 ‘연결하고 관계 맺는 사명’이다. 이는 하늘과 땅, 육체와 영혼, 참과 거짓, 너와 나, 전체와 부분, 인간과 동물, 거룩함과 세속이란 경계를 넘어 서로를 부양하고 연결하는 매개체다.
권력은 때로 착취의 도구가 되지만, 권위는 결코 그럴 수 없다. 권력은 사라질 수 있지만, 권위는 관계가 이어지는 한 살아 숨 쉰다. 그리고 그 관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의 방식이 흐르고 있다.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낮추시는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은 십자가 죽음마저도 지탱하고 연결해주는 구원이 열리는 생명의 고리가 되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우리나라에 새 정부가 출범했다. 부디 새 지도자가 ‘이 시대의 연결을 지탱하고 공동체를 부양하는 생태적 리더십’을 실현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영성이 묻는 안부>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셨지만 세속적 권력을 휘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권위를 보여주셨지요. 그분의 힘은 명령과 억압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의 관계 안에서 비롯된 권위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7) 이처럼 참된 권위는 신뢰와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위임받는 힘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리더입니다. 직책에서 오는 힘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돌보고 연결하는 모습 속에서 생태적 리더십을 실현할 수 있답니다. 서로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함께 길을 찾으며 동행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의 영성이 조금씩 자라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