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인지 그리움인지’라는 노래 제목처럼 우리 마음에 생기는 미운 감정은 명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감정이다. 분명한 것은 미움이란 감정이 우리 마음을 괴롭고 답답하게 하며, 타인과의 관계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미움이 커져 원망과 증오가 되고 가슴 깊이 옹이와 같은 응어리로 남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마음속 이야기를 누군가와 함께 나누며 자신의 괴롭고 답답한 심경을 공감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 누군가는 판단 없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가족이나 친구·지인일 수 있지만, 기도 중에 만나는 주님일 수도 있다. 미사나 기도 중에 주님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괴로운 마음을 주님께 보여드리고 공감과 위로를 청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그와 더불어 미움이라는 감정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물며 괴로워하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임을 헤아려보자. 그렇다. 우리는 무쇠로 만들어진 인조인간이 아니라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육신과 마음을 지닌 연약한 존재다. 그렇기에 미움이 생기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화해와 용서, 평화와 일치, 너그러움과 관대함인데, 실제로 드는 마음은 미움과 증오, 서운함, 시기와 질투다. 이를 너무 빨리 윤리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우리가 그렇게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미움이라는 감정에 담긴 또 다른 신호를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유독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큰 미움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우리의 신뢰와 기대, 그리고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미움은 완성되지 못한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움은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표현인 것이다.
우리가 미움의 감정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은 그것을 넘고자 하는, 곧 보다 큰 사랑 안에서 상대방과의 일치를 열망함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괴로움 속에 끝까지 머무를 수는 없는 존재,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타인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부정적인 관계와 감정을 넘어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다. 실제로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맛보는 때는 그동안 미움과 증오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졌던 가족이나 이웃과 화해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청하며, 그동안의 오해를 씻고,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을 모을 때가 아닌가. 바로 그 순간, 모든 감정의 실타래가 풀리고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것을 경험하며, 우리는 진정 치유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인간이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이들과 만나 관계를 맺고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우리 존재 자체에 새겨진 소명임을 의미한다. 관계 안에서 성장하고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타고난 성소라는 의미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오셨다. 미움과 증오, 원망과 시기, 혐오가 우리 안에 생겨날 때, 그 감정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반응하거나 괴로움 속에 머물기보다, 주님과 함께 머무는 가운데 그 감정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이를 사랑의 완성을 향한, 그리고 보다 큰 화해와 일치를 향한 하느님 부르심으로 알아듣고, 우리 안에 그러한 열망을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드리면 좋겠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