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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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차례 선교 여행 떠났던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

[저는 믿나이다] (32) 바오로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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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는 어릴 때부터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바리사이로 성장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으나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카라바조 작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유화, 1600,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바오로 사도는 서기 8년 로마 제국 속주인 킬리키아(튀르키예 남부) 수도 타르수스의 벤야민 지파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사도 21,39; 필리 3,5. 가톨릭교회는 2008년에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을 기념했다.) 그는 유다인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습니다.(사도 22,28) 곧 부모에게 로마 시민권이 있었다는 뜻이지요.

그는 어려서부터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 랍비의 문하에 들어가 율법에 충실한 바리사이로 성장했습니다.(사도 22,3) 골수 바리사이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는 첫 그리스도인 순교자 스테파노가 처형되는 것을 지켜봤고,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이기 위해 특별 권한을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사도 9,1-2)

그는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주님 음성을 들었지요. 그는 너무 놀라 사흘 간 보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지내다 하나니아스를 만나 눈을 뜨게 되고 세례를 받습니다. 바로 ‘바오로 회심 사건’입니다.(사도 9,1-19; 22,4-21; 26,9-19)

바오로는 회심 3년 뒤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베드로 사도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만나고 이후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선포합니다.(갈라 1,16-18)

바오로 사도는 바르나바와 함께 만 1년 동안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합니다.(사도 11,19-26)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 땅에 큰 기근이 들어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함께 구호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로 갑니다. 회심 후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었습니다.(사도 11,27-30)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45~49년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키프로스 섬 살라미스와 파포스를 거쳐 소아시아 남부 팜필리아의 페르게-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이코니온-리스트라-데르베까지 갔다가 안티오키아로 되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사도 13,3─14,27)

1차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의 할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사도 회의가 소집되고 베드로 사도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유다인이 아닌 이민족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 하지 않아도 되고, 율법 준수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기로 합니다.(사도 15,1-35)

바오로 사도는 이 결정으로 이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힘을 더욱더 얻게 됩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2차 선교 여행을 떠나지요. 50~52년까지 약 3년 동안 이뤄집니다. 바오로는 바르나바가 아닌 실라스와 함께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두루 다니며 그곳 교회들을 굳건하게 만든 후 데르베-리스트라-갈라티아 북부-프리기아-미시아-트로아스를 거쳐 사모트라케 섬을 통해 유럽 본토인 필리피로 갑니다.

바오로는 필리피에서 티아티라 출신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에게 세례를 주는 등 선교 활동을 펼치다가 감옥에 갇힙니다. 그는 간수와 그 가족을 개종시키고, 행정관들의 요청으로 필리피를 떠나(사도 16,11-40) 암피폴리스-아폴로니아-테살로니카-베로이아를 거쳐 아테네로 갑니다.(사도 17,1-15) 그는 아레오파고스에서 아테네 시민들을 대상으로 열띤 선교를 한 후 코린토로 향하지요.

그는 코린토에서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를 만납니다. 50~51년쯤에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씁니다. 그는 코린토 교회에서 1년 6개월 동안 지낸 후 에페소로 갑니다. 그런 후 카이사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갔다가 안티오키아로 복귀합니다.(사도 18,5-22)

바오로는 얼마 후 3차 선교 여행길에 오릅니다. 53~58년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바오로는 두 차례의 선교 여행 때에 세운 교회들을 찾아 신자들을 격려하고는 에페소에서 27개월간 선교 활동을 펼쳐 콜로새와 히에라폴리스, 라오디케이아 교회를 세우는 등 큰 성공을 거둡니다. 또 이곳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과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씁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서를 쓴 후 에페소를 떠나 마케도니아를 거쳐 코린토에 갑니다. 이곳에서 3개월간 머물면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씁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오로는 얼마 있지 않아 유다인들의 선동으로 성전에서 체포돼 카이사리아로 호송된 후 그곳에서 2년을 지냅니다. 바오로는 황제에게 상소, 재판을 받기 위해 61년에 로마에 도착합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로마에서 2년 동안 셋집을 얻어 지내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후 순교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석방된 후 스페인까지 선교한 후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바오로 사도는 네로 황제 시절 63~67년 사이 로마 성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순교할 때 목이 떨어지면서 세 번 튀었는데 그 자리에 샘이 솟아났다고 합니다. 그곳에 바오로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는데 로마 성 밖 ‘트레 폰타네’(세 분수) 성당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시신은 로마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 중앙 제대 아래에 모셔져 있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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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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