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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는 세계 자체임과 동시에 나의 고유한 세계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25. 자기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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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경계를 짓고 경계 안에 사는 존재다. 경계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계 유다인 사회심리학자인 레빈(1890~1947)은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다른 문화권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경계’라는 개념으로 해석한 바 있다. 여기서 경계는 자기를 보호하는 울타리이자 자기 정체성을 찾아 삶의 뿌리를 내리는 터전이기도 하다.

철학적인 차원에서 경계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떤 조건 속에 있음을 가리키며, 이는 인간이 양극 ‘사이’에 놓여 있음을 말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영혼과 육체, 무한과 유한, 영원과 시간, 위대함과 미소함 사이에 놓여있으면서 진정한 자기로 있기 위해 둘 사이를 끊임없이 조정하는 가운데 자기 경계를 설정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 경계가 균형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절망한다.

인간의 경계 짓기는 세계 속에서 실현된다.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그 태어난 세계로 던져지며, 또 그 세계에서 자기 실존을 위한 투신이 이루어진다. 이 세계가 바로 앞서 이해된 경계 지어진 세계다. 이미 이해된 세계는 과거와 현재의 해석 사이에서 경계를 이루지만, 곧 그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이해로 우리를 초대한다. 새로운 이해를 통해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경계를 넘어서는 체험을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여러 제약으로 경계 지어진 근본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매 순간 결단과 도약을 통해 경계를 넘어서는 노력을 시도한다. 경계를 넘어서는 체험은 절대적 존재 혹은 초월자를 향한 정신의 초월성을 발휘함으로써, 또 자기 존재 가능성을 향해 세계에 자기를 ‘기획 투사’함으로써, 끊임없는 자기규정 안에서 자기를 초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철학상담적인 차원에서 경계는 세계 자체임과 동시에 나의 고유한 세계를 의미한다. 정신에 의해 매개된 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철학상담에서 내담자 치유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나의 경계는 정신에 상응하여 고유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고 구조화되어 있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서 감정을 표현하고 사고하며 행위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세계에 기반하여 자기 고유한 세계를 형성하며, 이는 나를 경계 짓는 조건이 된다.

이런 경계는 반복적이고 고정된 일정한 나의 ‘행동양식’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일정한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또 개인의 고유한 관습·습관·교육·체험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때 행동양식은 일정한 ‘개념’과 ‘고정관념’을 통해 이루어진 ‘상황 해석’이자 ‘판단 작용’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개인 및 집단적 경험에 기반한 문화(역사)와 이념(철학)의 영향 아래 놓여있으면서 나의 행위 전반에 걸쳐 강한 힘을 발휘하며 삶을 통제하기에 쉽게 자기 경계를 허물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르테가(1883~1955)는 「대중의 반역」을 통해 오늘날 자기 성찰이 부재하는 비인격적이며 무책임한 거대한 대중 집단의 고정관념에 우리가 너무도 쉽게 노출되어 있음을 경고한다. 이러한 대중 집단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의무와 책임을 도외시하고 자기 의견만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존재도 무시한다. 대중 집단이 휘두르는 폭력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길은 대중에 편승하여 안정감을 추구하는 자기 경계를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허물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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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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