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금주의 성인] 바울리노 (6월 22일)

353~431년, 프랑스 출생 및 이탈리아 선종, 주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바울리노 성인. 굿뉴스
 

바울리노 성인은 353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바울리노는 그리스도교 신자인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본래 이름은 메로피우스 폰티우스 파울리누스로, 보르도의 학교에서 그리스와 라틴 문화를 접했습니다. 수사학과 시는 로마의 그라티아누스 황제의 스승이었던 데키무스 마뉴스 아우소니우스에게 배웠습니다.

바울리노의 부친은 오늘날 프랑스 지역인 갈리아 지방 총독으로 상당한 지위와 재산을 갖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란 바울리노는 30세 때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의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그의 생애에 깊은 영향을 준 놀라의 수호성인인 펠릭스 성인의 영성과 삶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리노는 잠시 보르도에 머물다가 스페인 동북부 지역인 카탈루냐로 가서 그곳의 상류층 가문 출신인 테라시아를 만나 결혼합니다.

결혼 후 보르도로 돌아온 바울리노는 아내와 함께 상속받은 막대한 영토를 관리하며 활발히 사회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지방 명사들과의 모임에도 적극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밀라노의 파울리노를 통해 성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나게 됩니다. 그 만남을 계기로 비신자였던 바울리노는 그리스도교를 마음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보르도의 성 델피노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때 그의 친구이자 나중에 부르주의 주교, 교회사학자가 된 술피치오 세베로 성인도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믿음을 키워나갔습니다. 바울리노는 보르도를 떠나 390년부터 아내의 영지가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생활하면서 아들 켈수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생후 8일 만에 사망하고 맙니다. 바울리노는 막대한 재산을 팔아 교회와 가난한 이들에게 전한 뒤 철저히 금욕적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394~395년경 주님 부활 대축일에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바르셀로나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울리노는 놀라 지방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다시금 막대한 재산을 팔아 펠릭스 성인의 무덤이 있는 치미틸레 옆으로 이주해 아내와 함께 투르의 마르티노 성인의 모범을 본받은 작은 수도 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바울리노는 아내와의 부부관계를 포기하고 몇몇 회원들과 함께 펠릭스 성인을 공경하는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펠릭스 성인의 무덤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맞아들이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교회 직무를 수행, 학문을 연구하며 수도생활을 이어나간 것입니다. 그는 또 펠릭스 성인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지어 봉헌하고, 건물 벽에 성경 내용을 벽화로 그려넣도록 했습니다. 409년 바울리노는 놀라의 주교로 서임되어 22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했습니다.

바울리노는 고트족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고, 원죄와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펠라기우스주의 이단으로부터 교회의 정통 교리를 지켜냈습니다. 그는 431년 6월 22일 놀라에서 저녁 기도 중 선종해 펠릭스 성인 무덤 곁에 묻혔습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6-1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6. 19

시편 36장 10절
정녕 주님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주님 빛으로 저희는 빛을 보나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