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보내지만, 시간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상처가 난 곳은 조치만 잘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낫기 마련이다. 우리는 빨리 낫기를 바라지만, 다친 몸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여리디여린 우리 마음도 상처를 입기 마련이며,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만큼 우리는 약한 존재이며 상처 입기 쉬운 존재다. 그리고 그 상처가 낫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한 보살핌과 함께.
신앙에서도 시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신 것은 ‘때가 찼을 때’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공생활 중에도 예수님은 당신의 때를 기다리셨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요한 13,1) 때가 무르익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특히 하느님의 뜻이 그렇다.
프랑스에 있을 때 한 은사 신부님께서 8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복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삶의 깊이가 더해지고 신앙이 무르익으며 예수님 말씀과 행적의 깊이가 예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이제 진리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뜨인 것이다.
신앙의 진리 역시 긴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이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따르기 어려운, 너무나 비현실적인 계명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용서가 어려운 우리, 특히 원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이 아직 정리가 안 된 우리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 우리 감정도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에 달려있다. 그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는 주님의 보살핌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약함과 한계를 잘 알고 계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당신 계명을 결코 거둬들이지 않으신다. 다만 기다리실 뿐이다. 그 길 말고는 우리가 구원과 완덕에 이르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를 관통하지 않고 맛볼 수 있는 참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실마리가 생기고 살 길이 열릴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원수 사랑의 계명과 지금 우리의 마음 사이 거리, 그리고 기다려야 할 시간, 그 거리와 시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세상이 변할 것이다. 바로 지혜의 문턱에 다다르는 순간일 것이다. 그 시간은 우리의 사랑이 무르익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며, 그 거리는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있음을 일깨우는, 그리고 약함과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용기를 내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거리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과 함께 우리 마음도 조금씩 벗어버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간다.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긴다. 기다리고 이해하고 품에 안아줄 수 있는 너그러움과 관대함이 우리 영혼을 해방해 줄 것이다.
이렇게 시간은 우리를 가르친다. 지혜를 쌓는 법, 기다릴 줄 아는 법, 관대하게 받아줄 줄 아는 법을. 우리는 그렇게 익어가는 것이다. 만약 지금 마음의 정리가 안 되고 흔들리고 있다면, 스스로 되뇌자.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시간은 하느님의 것이라고.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