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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벗어나려면 어긋난 자기 관계 회복해야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26.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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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수많은 역경과 시련의 연속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의미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릴 때 사람들은 절망한다. 절망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알코올과 약물 과다 복용·자살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해마다 증가한다.

경제학자 디턴(Angus Deaton, 1945~)은 이러한 죽음을 ‘절망사’(deaths of despair)라고 부른다.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절망사는 빈부격차의 확대 속에 삶에 지친 빈곤층이 누적된 심적 고통에 짓눌리다 자살·마약·알코올 중독 등으로 생을 마감하는 일종의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절망사를 막기 위해 경제적·사회적 안전망 확보와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외부적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다. 사람들은 절망을 외부적인 장애 요인들과 연결해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절망은 철학적으로 더 근본적인 인간의 실존적 현상이며, 외부적 장애 요소가 제거된다고 완전히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망을 인간 실존의 근본 현상으로 고찰한 철학자가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다. 그는 현대를 ‘절망의 시대’로 진단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을 본래적 자기를 획득하는 ‘자기 됨’의 주요 계기로 삼는다. 절망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로서의 종합, 즉 영혼과 육체, 유한과 무한,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자유와 필연의 관계를 자기 삶에 관계시키는 가운데 오는 불균형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 소진하는 ‘자기 잠식’이자 절대적 존재인 신과의 관계 단절에서 오는 ‘죄스러운 상황’을 의미한다.

이런 ‘관계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절망을 키르케고르는 ‘자기 관계의 병’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절망이 죽을 만큼 고통스럽고 위험하며,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지만 또한 그로 인해 누구도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맞지만, 육체의 질병과 다르게 영혼의 질병으로서 죽는 것이면서도 죽지 못하는, 즉 죽음을 소망할 수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는 ‘실존적 병’인 것이다. 그럼에도 키르케고르는 ‘절망이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영원성을 잠식시키는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절망은 특수한 일부 사람만이 겪는 병이 아니라 실존하는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현상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절망 가운데에 있지만, 이 절망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으며, 설사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회피하거나 반항한다. 그러나 절망이 자기 관계의 병인 한, 인간은 자기 관계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절망과 대면할 필요가 있다.

어긋난 자기 관계의 회복은 자기 위선 없이 절대자(신) 앞에 홀로 서는 ‘실존적 양심’에 있다. 실존적 양심은 자기기만이나 가식 없이 자기를 투명하게 보는 ‘진정성’과 ‘자기 책임’에 기반한다. 진정한 자기를 좇아 실존하는 자에게 삶이란 잔잔한 대하(大河)가 아니라 사나운 돌풍이며, 그 진실은 고통이다. 이에 철학상담은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들이 고통으로 절망할 때, 자기 성찰을 통해 스스로 자기 삶을 결단하고 고유한 자기 실존을 짊어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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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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