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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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순종·순결한 사랑만이 참된 행복을 찾는 유일한 길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19.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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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기술과 기계의 편의 속에 우리는 욕망만 증식시키며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시민들이 행사장에서 휴대폰으로 연신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어둡고 암울한 노래, ‘사의 찬미’다.

사춘기 시절 나도 이 노랫말을 곧잘 읊조리곤 했다. 돈도 명예도, 심지어 사랑이 뭔지도 몰랐던 10대가 ‘허무’를 노래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시절만큼 인생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했던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 이 탄식은 ‘사의 찬미’의 ‘허무’와 겹쳐진다. 그러나 코헬렛은 허무에 머물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빛을, 죽음 너머에 영원을 바라본다. 어쩌면 인생의 무상함을 직면한 사람만이 하느님의 영원 안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욕망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렸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돈·명예·쾌락. 정신을 지배하는 이 세 가지 앞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무릎을 꿇는다.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라는 이어지는 노랫말이 다시금 귓가에 맴돈다.

그런데도 우리는 멈추어 성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빠르게 달리는 쪽을 택한다. 디지털의 속도는 깊은 사유를 밀어내고, 존재에 대한 질문을 품을 여백마저 없애버린다. 틈만 나면 현실보다 가상의 스크린에 몰입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한 채 원자화된 디지털 세계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누구나 단순한 재미로 시작하지만, 어느새 중독되고 만다.

기계의 편의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힘을 조금씩 잃어간다. 지루함을 참지 못해 끊임없이 자극을 찾고, 감정을 스크린 속에 쏟아붓는다. 시간을 소비하는 루틴 속에서 우리의 삶은 점점 기계처럼 굴러간다. 그 시간의 끝에 “잘 쉬었다”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기지고 우울하다. 왜일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동안 오히려 스트레스성 호르몬이 증가하고, 우리 뇌는 진짜 ‘쉼’을 잊은 채 과부하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휴식’이라 착각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 돈·명예·사랑. 하지만 이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 갈망으로 되돌아온다. 끝이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욕망의 본질이다. 디지털은 바로 이 욕망을 자극해야만 유지되고 증식되는 구조다. 반복적으로 그 유혹에 노출될수록 우리는 점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디지털은 ‘우상’이 되고, 우리는 자발적으로 그 앞에 무릎을 끓는다. 즉각적인 반응과 자극, 끝없는 정보와 만족. 마치 이런 속삭임처럼 들린다.

“당신들의 하느님은 숨어 계시고, 응답도 늦지. 하지만 나는 즉각적으로 반응해주고, 무엇이든 줄 수 있어. 심지어 당신 손에 나의 신적 권능까지 쥐여줄 수 있어.” 에덴동산의 그 유혹 - “그 열매를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창세 3,5) - 은 오늘날 스마트폰이라는 ‘신전’ 앞에서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깊은 허무감은 단지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오히려 참된 질문을 품은 이에게만 열리는 ‘깨어남의 문’일 수 있다. 가상의 연결 속에서 고립된 우리 존재가 진짜 삶으로 돌아오려는 몸부림일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는 비움의 ‘가난’, 낮춤의 ‘순종’, 순결한 사랑이라는 복음삼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살아야 할 이 시대의 영성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성심(聖心)을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셨다. 상처 입었으나 여전히 타오르는 사랑, 끝까지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성심. 그분의 삶은 참된 자유와 행복이 어디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예수님은 ‘가난’과 ‘순결’, 그리고 ‘순종’으로 세상 욕망을 거슬러 하느님 사랑 안에서 충만한 삶을 사셨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그 길 위로 초대받고 있다.

광막한 디지털 광야를 달리는 그리스도인, 당신은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 가난과 순종, 그리고 순결한 사랑만이 참된 행복을 찾는 유일한 길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우리는 지금 스마트 신이 약속하는 ‘즉각적 응답’이 아니라, 말없이 기다리며 내 깊은 내면에서 만나게 되는 무한한 예수님 사랑, 예수 성심을 기억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 사랑의 계명은 디지털의 분주함 속에서 우리 존재의 중심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길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더 깊이 사유하고, 더 온전히 사랑하며, 더 고요히 하느님 앞에 머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많은 우상의 손짓과 아우성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참된 자유를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억해요. 돈과 명예·쾌락이라는 우상과 손을 잡는 순간, 하느님과의 신의를 저버리게 되고,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허무’일 뿐임을. “헛된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은 신의를 저버린다.”(요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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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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