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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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독으로 지친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자기 돌봄’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29.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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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은 노동과 관련하여 인간은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다”(창세 3,19)라고 기술한다. 성경 구절의 맥락상 노동은 인간이 하느님의 금기사항을 어긴 데서 오는 죄의 결과로 묘사되지만, 여기에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노동하는 존재’라는 더 근원적 통찰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노동을 통해 끊임없이 수고해야 하지만, 인간에게 노동은 단순한 생명활동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철학자 아렌트(1906~1975)는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과 관련해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고대 노예제도를 통해 인간은 자연환경의 노동(labor)으로부터 해방되어 제작환경의 작업(work)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노동이 자연환경 속에서 적응하고자 하는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이라면, 작업은 자연환경이 아닌 제작환경을 통해 인공 세계의 사물 대상과 관계하는 인간의 고유한 활동을 의미한다. 즉 노동이 제작과는 무관한 생명활동의 영역이라면, 작업은 생산품을 만드는 제작활동의 영역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의 인간은 더는 ‘노동하는 인간’(homo labor)이 아닌, ‘제작하는 인간’(homo faber)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노동과 작업의 분리는 근대의 자본 집약적 사회구조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인간이 작업을 통해 물건을 대량 생산하고, 교환을 통해 파생되는 잉여가치를 향유하게 됨으로써 현대의 노동은 작업의 결과인 ‘잉여가치’와 ‘잉여향유’ 없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지젝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잉여향유’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이런 욕망이 인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소진케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번아웃’(burnout) 현상은 끝을 모르는 인간 욕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노동하는 인간은 과도한 작업과 과잉 활동을 통해 성과의 극대화를 꾀하는 ‘성과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삶은 전혀 ‘여유로움’이 없는 ‘조급함’으로 가득하다. 고대 희랍어나 라틴어의 어휘에서 보듯이 ‘일’(?σχολ?α/negotium)과 ‘여가’(σχολ?/otium)는 서로 대응 관계에 있으며, 피로는 과도한 일로 인해 충분한 여가를 갖지 못한 데서 오는 심신이 지친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을 ‘성과 중심’에서 ‘열매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열매 중심의 노동은 성과를 지향하기보다는 노동 그 자체로부터 의미를 찾고, 또 노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결실을 지향한다. 이는 전혀 여유로움이 없이 과도한 자기 긍정과 성과만을 지향하는 ‘성과 주체’가 아니라 자기 재능과 능력에 부합한 ‘열매 주체’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자 플라스푈러는 현대인의 ‘우울한 노동’을 경고하면서 현대인은 일 중독에 빠져 있으며, 이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강박적 사랑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일 중독자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기보다 오히려 일을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일 중독으로 인해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돌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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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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